이형택 "이런 경기 처음이에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기적 같은 역전 우승을 일궈낸 이형택이 상대 공격을 강력한 백핸드 스트로크로 응수하고 있다. 이형택은 타이브레이크 0-6에서 8-6으로 뒤집었다. [연합뉴스]

결승전 마지막 3세트 타이브레이크에서 0-6. 한 점만 더 내주면 경기는 끝이었다. 열심히 이형택(삼성증권.세계 111위)을 응원했던 관중도 체념하는 빛이 역력했다. 그러나 이때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무심(無心) 타법'으로 한 점, 한 점 따라붙더니 어느새 6-6이 됐다. 듀스. 이제부터는 누가 2점 차로 이기느냐 싸움이 됐다. 당황한 니콜라 톰먼(프랑스.280위)의 잇따른 실책. 0-6이던 점수는 8-6으로 뒤집어졌다. 연속 8득점이었다.

한국 남자 테니스의 간판 이형택이 30일 서울 올림픽공원 테니스코트에서 벌어진 삼성증권 국제남자챌린저테니스(총상금 10만 달러) 단식 결승에서 톰먼에게 기적 같은 2-1(4-6, 6-1, 7-6) 역전승을 거두고 우승했다. 대회 3연패 및 통산 5회 우승을 달성한 이형택은 우승상금 1만4400달러(약 1440만원)와 함께 남자프로테니스(ATP) 포인트 80점을 챙겼다.

이형택은 자신도 믿어지지 않는 듯 "오늘처럼 드라마 같은 역전승은 꿈만 같다. 앞으로 평생 이런 경기는 못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은 이형택은 "타이브레이크 0-6에서 뒤집는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타이브레이크에서도 밀리고 있을 때 '이 게임 역전시키면 웃기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며 소감을 밝혔다.

전날 준결승에서 모두 3시간 가까운 풀세트 접전을 벌인 두 선수는 결승전에서도 2시간37분간의 혈전을 벌여야 했다. 33세로 대회 출전선수 중 가장 나이가 많은 톰먼은 강력하면서도 안정된 포핸드 스트로크로 경기 내내 이형택을 괴롭혔다. 왼쪽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다가 갑자기 오른쪽으로 날아오는 스트로크에 이형택은 번번이 당했다. 1세트를 4-6으로 내준 이형택은 2세트에서 상대의 두 번째 서비스 게임을 따내며 6-1로 이겨 승부를 3세트로 넘겼다.

3세트에서 두 선수는 자신의 서비스 게임을 착실하게 따내 게임스코어 6-6이 됐고, 먼저 7점을 따내야 하는 타이브레이크에 돌입했다. 톰먼의 첫 서비스가 에이스가 되면서 경기는 일방적으로 흘렀다. 톰먼의 날카로운 스트로크가 잇따라 코트 좌우에 꽂혔다. 0-6이 되자 톰먼은 우승을 자신했으나 이형택의 추격은 무서웠다. 6-5까지 쫓긴 톰먼은 자신의 서비스에서 더블 폴트를 범해 듀스를 허용했고, 결국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이형택은 2003년 RCA챔피언십(미국 인디애나폴리스)에서 톰먼에게 당한 0-2(4-6, 5-7) 패배도 통쾌하게 설욕했다.

허진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