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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의 나들이자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온몸이 흠뻑 젖은 초산의 고통후에 첫애를 낳고 처음 젖을 물린게 어제일 같은데 어느새 아이는 훌쩍 자라 내일이면 다섯번째의 생일을 맞는다.
첫아이밑으로 또한번 해산의 기쁨을 맛보았지만 첫 출산의 그 떨리던 기쁨은 내내 잊을수없다.
눈곱이 나오고 기침을 하고 보이지 않게 자라는 손톱을 잘라주며 자연의 오묘한 섭리를 얼마나 신비로와했던가.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좋아 작은 가슴에 귀를 대고 한밤을 꼬박 새우기도 했었다.
첫 해산을 할 무렵부터 생긴 생활의 어려움은 그럴듯한 상표의 옷 한벌 못 입히고 변변한 장난감 하나 쥐어주지 못하는 못난 엄마로 만들어버렸다.
작년이던가? 결혼기념일이니 아이들 데리고 시원한 물가에라도 가자는 남편의 제안에 즐거워 어쩔줄 모르는 아이들을 보며 도시락을 준비했다.
맛있는 음식과 통닭 한마리쯤 준비하고 싶었지만 내빈 주머니로는 아무것도 마련할수없었다.
밥과 김치와 삵은 감자 외에는…. 보잘것없는 찬을 부끄러워하는 내게 남편은 충분하다며 위로해주었다.
맑은 물과 매끄러운 반석이 무척 좋았고, 모처럼의 나들이인지라 아이들의 웃음속에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 아이는 재 또래의 동네 애들을 모아놓고 신나게 자랑했다.
『엄마랑 아빠랑 버스타고 저기 갔었다. 물도 많고 고기가 막 다니더라. 우린 뭐 먹은줄 아나. 김치먹고, 밥먹고, 감자먹고, 또 김치먹고, 밥먹고, 감자먹고, 또 먹고, 또 먹고….』 작은 손바닥을 펴고 아무리 세어도 다른건없다.
아이는 세고 또 세며 자랑했다.
방에서 뜨개질을 하던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삶은 계란 몇개나 사탕 몇알쯤 더 챙길수 있었건만 무심히 지나버린 나는 못난 엄마였다.
이제 제 덩치 만한 동생을 자전거 뒷자리에 태우고 내일도 상글거릴 딸아이를 보며 또한번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부산시북구엄궁동263의11 18통3반> 김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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