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뒤늦게 터진 열린우리당의 불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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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집권당 내에서 제대로 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 것은 당연하고도 반가운 일이다. 민심의 심판을 받는 선거에서 참패하고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잘못을 고칠 생각도 하지 않는다면 죽은 정당이다. 지지율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당이 청와대에 끌려다니면서 방향을 잡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고 있었을 때 이런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것이 문제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당.정.청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당을 쇄신해야 당도 살고 국민도 편안해진다. 결코 당 지도부 몇 사람이 물러나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 왜 창당 1년9개월 만에 5명의 당의장이 사퇴할 수밖에 없었겠는가. 당의 정치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이런 일이 되풀이될 뿐이다.

의원들의 비판이 노무현 대통령과 청와대에 집중됐다는 점도 중요한 대목이다. 정장선 의원은 "대통령은 더 이상 정치문제에 관여하지 말라"며 정기국회 직후 내각 총사퇴를 주문했다. 유승희.우원식 의원은 "청와대는 대통령과 코드를 맞추는 사람들로 채우지 말고, 국민의 입장과 뜻을 제대로 전달하는 사람들로 바꿔야 한다"며 청와대의 전면 쇄신을 요구했다. 임종인 의원은 "대통령에게 지당하다고만 말한 사람들도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여당 의원들의 대통령과 청와대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봇물 터진 듯 쏟아졌다는 점에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노 대통령은 여당 의원들의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대통령은 민생에 전념하고, 여당은 국민의 뜻을 정치에 제대로 반영해내야 지지를 얻을 수 있다. 그게 재선거에서 드러난 민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