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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12)-제80화 한일회담(11)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국회는 51년7월16일부터 3일간 대일강화조약초안을 토의했다. 국회는 임정이 2차대전중에 일본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고 실지로 중국에서 참전한 사실을 들어 우리가 정식으로 조약조인에 참가해야 마땅하다고 주장, 정부가 이의 실현을 위해 외교적 노력을 경주해야한다고 몰아세웠다.
국회는 19일 이교섭을 위한 외교사절단의 파견에 관한 결의안을 가결했다. 정부는 이보다 하루앞선 18일 양유찬주미대사를 통해 「덜레스」미국무성 고문에게 우리 정부건의서를 수교했다.
우리의 강화회의 참가요청에 대해 「덜레스」고문은 그 자리에서 양대사에게 『한국은 제2차대전중에 일본과 정식으로. 전쟁상태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우리의 당사자자격을 배척하고 『그대신 미국은 한국의 이익을 적절하게 대표해주겠다』고 말한 것으로 들은적이 있다.
사실 우리의 전승국지위확보문제는 정부수립직후부터 제기돼온 염원이였다. 이승만대통령은 정부수립직후인 48년9월30일 국회에서 발표된 신정부의 시정연설을 통해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주의의 완전한 포기와 앞으로의 민주주의국가 재건을 엄중히 감시하고, 장차 한국이 연합국의 일원으로서 대일강화희의에 참가하는 것을 연합국에 요청한다』고 밝힌바 있다.
이대통령은 특히 「덜레스」씨가 50년6월17일부터 21일까지 자신의 초청을 받고 서울을 방문했을 때 「딜레스」씨에게 이점을 지적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는 본다.
왜냐하면「트루먼」미대통령은 당시까지 미군부의 강력한 반대와 소련의 불참위협에 따라 대일강학조약체결의 방침도 제대로 굳히지 못한 형편을 타개하기 위해 반대당인 공화당의 외교정책대변자로 지목되던 「덜레스」씨를 기용, 처음으로 일본에 파견했던 길이었기 때문이다.
「덜레스」씨는 이대통령을 만나고 일본에 둘러 조속한 대일강화조약체켤을 주장해온 「맥아더」점령군 최고사령관(SCAP)과「요시다」(길전무)일본수상등을 만나 강화조약체결을 협의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대통렴이 이같은 기회를 놓쳤을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미·영·중국·일본(SCAP상대)등의 재외공관에 대일평화조약체결 당사국이 되도록 운동하도록 훈령을 내린 것은 강화조약체결 움직임이 막바지에 이른 51년 봄이었다.
당시 주미대사관 1등 서기관으로 그 실현을 위해 동분서주했던 한표욱씨의 회고-.
『주미대사관은 본국의 훈령을 관철하기 위해 국무성과 활발한 접촉을 벌였지만 우리의 주장은 처음부터 좌초되고 말았다.
국무성은 중경임시정부가 대일선전포고를 한 것은 인정하나 임시정부자체가 당시 국제법상 인정을 받지 못했으므로 회원국 자격으로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공식입장을 밝혔다.
그렇지만 미국은 우리의 주장을 받아들여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에 업저버자격으로 참석하는 것은 용인하겠다고 했다.
그 결과 정부는 51년9월8일 샌프란시스코의 오페라관에서 열린 깅화회의에 임병직주유엔대사, 양유찬주미대사및 나를 정부 대표단으로 파견할수 있었다.
한국대표단은 회의에 참석해 각국 대표들과 접촉하며 전쟁 피해국으로서의 입장을 반영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나로서는 지금도 한편으로는 아쉽고 또 한편으로는 부가해하다고 느끼는 점은 당시 이대통령이 이 문제에 대해 끝까지 일관된 태도를 견지하지 않고 중도에 이 훈령을 돌연 취소시킨 사실이다.
한국이 이 조약의 서명국이 된다는것은 미국의 지적처럼 실정 국제법상으로 볼때 다소 무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임정의 대일선전포고는 물론 중국각지에서 독립군이 대일전투에 참가한 것이 사실이므로 우리의 주장이 전혀 망발은 아닌 것이였는데 이대통령은 어쩐 일인지 중도에 중지하라는 훈령을 내렸다.
만일 이 운동이 성공했더라면 우리는 당당하게 전승국의 일원으로서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에 참가하였거나, 그렇지 않으면 따로 대일평화회의를 열고 구구한 「청구권」이 아니라 떳떳한 전쟁배상을 요구할 수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미국이 우리의 주장을 배척한 데는 다음과 같은 배경도 무시하지 못할 요인이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당시 미국은 일본의 경제력을 배양시켜 공산세력에 대항케하기 위해 될수록 전승국의 대일배상을 포기시키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한국을 당사국으로 인정할 경우 엄청난 배상을 요구할 것이고 그렇게 될 경우 일본은 거의 파산될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을 고려했을 가능성 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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