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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D 업종’ 원양어업, 참치는 누가 잡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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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원양어선이 참치 선망 작업을 하는 모습. 최근 참치선망어선은 어군탐지기·소나·레이더·위성통신장치에 이어 헬기까지 동원한 첨단 장비를 갖추고 있다. [사진 한국원양산업협회]

“더럽고 위험하고 어려운 3D 직업보다 더 심한 4D 업종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1964년 세워진 한국원양산업협회의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선 최근 자조 섞인 한탄이 자주 흘러나온다. 외화벌이의 선봉장이라는 자부심은 오래전에 사그라들었다. 60~70년대만 해도 원양어업은 한국의 수출주력산업이었다. 58~79년 원양어업 수출액은 약 20억 달러에 달했다.

 요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70년대 원양 선원 2만 3000여 명이 태평양·대서양·인도양을 누볐지만 지금은 6200여 명 수준으로 줄었다. 조업 가능 해역도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77년 850척에 달했던 선박은 10년 째 감소세를 보이면서 2013년 342척만 남았다. 김현태(54) 한국원양산업협회 홍보·마케팅지원센터장은 “지금도 우리 식탁에 오르는 생선 중 40%는 원양어선이 잡아들인 것”이라며 “원양산업이 자꾸 쪼그라들면 서민들은 생선 구경하기 힘든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발생한 오룡호 침몰 사건은 더 큰 문제를 드러냈다. 경찰조사에서 오룡호는 자격 없는 선장인 이른바 ‘유령 선장’을 내세워 조업해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원양어선에 대한 전수 조사 결과에서도 절반 가까운 어선(172척)이 승무 기준을 위반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업계는 어선을 기피하는 분위기 탓에 어쩔 수 없다고 푸념한다. 

 업계 관계자는 “1996년 페스카마호(외국인 선원이 반란을 일으켜 국내 선원 살해), 2006년 보령호(소말리아 해적들로부터 4개월간 피랍), 2014년 오룡호 사건 등이 잇따라 일어나면서 젊은이들에게 원양어업은 위험한 직업이라는 인식이 강해졌다”며 “고교나 대학에서 원양어선 선원 양성을 거의 포기한 상태”라고 말했다. 한국원양산업협회에 따르면 선원을 양성하는 국내 교육기관은 대학교 6개와 고등학교 8개가 있지만 졸업하면 대부분 어선(漁船)이 아닌 상선(商船)으로 진로를 결정한다. 

 그럼에도 업계는 뾰족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협회는 지난달 26일 전국원양수산노조와 함께 ‘노사간 선원문제 해결을 위한 긴급회의’를 열었다. 하지만 위기 해법에 대한 노사 간 입장은 달랐다. 사측은 “외국인 채용을 간부급까지 확대해 시급한 인력난부터 해결하자”는 입장인 반면 노조측은 “선원 복지와 처우 개선을 하면 청년층 지원이 살아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갈수록 까다로와지는 조업기준도 원양어업을 위축시키는 요인이다. 유럽연합(EU)은 2013년 한국을 ‘예비 불법 어업국’으로 지정했다. 일종의 ‘옐로우 카드’를 내민 셈이다. 지적된 사항을 고치지 않아 ‘레드카드’인 불법 어업국으로 지정되면 EU 시장에 원양어업으로 잡은 수산물을 팔지 못한다. 조정희 해양수산개발원 국제원양연구실장은 “EU에 이어 미국에서도 불법어업 규정을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앞으로 당국에 보고하지 않는 마구잡이식 어획은 국제사회에서 퇴출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국제기준을 따를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앞으로 모든 원양어선에 위치 추적 장치를 달아 불법 조업을 감시할 방침이다. 99억원의 예산을 들여 불법 어업 구역으로 낙인 찍힌 서아프리카 앞바다에서 원양어선 18척을 줄이기로 했다. 조신희 해양수산부 원양산업과장은 “국민 먹거리 확보를 위해서라도 장기적인 대응책이 필요하다”며 “중소 원양업쳬 간에 협업을 강화하는 등 개선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김민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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