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진 대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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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며칠전 느닷없이 창문턱에 얹혀 있던 난화분이 방바닥으로 떨어졌고 동시에 웬 야구공도 함께 떨어졌다.
잠시 후 벨을 누르고 들어와 우물쭈물하는 아이에게 깨진 화분조각을 보이며 조금 흥분을 한 끝에 야구공을 돌려 주었더니 아이는 화분꽃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긴 잎은 좀 상했어도 마침 새싹이 돋아나고 있는 중이라 화분만 옮겨심으면 되겠기에 아이가 묻는 의도를 알고는 홈런은 운동장에서만 해야 되는 것이지 길에서 하면 안된다는 얘기로만 일러보냈더니 다음날 오후 다시금 찾아온 아이의 손엔 동그란 화분 하나가 들려져 있었다.
일부러 사들고 온 아이의 화분을 내려다보노라니 내가 어제 너무 흥분했었나 싶어지는 것이어서 이미 새로 심어놓은 창문턱의 화분을 가리키며 아이가 들고 온 빈화분에다 마당 한켠에 소담히 빨갛게 꽃을 피우며 크고 있는 제라늄 한포기를 뽑아 심어서 도로 안겨주었다.
열흘쯤 지난 토요일 오후, 다시금 찾아온 아이의 가슴엔 주먹만한 강아지 한마리가 안겨 있었다.
아이의 집 복순이가 새끼를 일곱마리 낳았는데 한마리 갖다드리라고 해서 안고 왔다는 것이었다.
아이구, 고맙구나-하는 인사와 함께 시원한 주스 한잔을 타 주면서『너 커서 뭐가 될거니?』 묻는 내 물음에 『필요한 사람요!』하고 대담하더니『또 놀러와도 돼요?』하고 묻는 것이었다.『그러엄!』 했더니 아이는 머리를 긁으면서 전부터 잔디있는 마당에 한번 들어와 보고 싶었다며 썩 웃었다.
『너 놀러 오고 싶어서 일부러 야구공 담안으로 던져 넣은건 아니지?』하고 장난삼아 눈에 힘주어 물었더니 아니라며 극구 부인하는 아이는 그로부터 친구들을 우루루 데리고 곧잘 놀러오곤 하였고, 항상 잠가 놓았던 대문은 아이들이 드나들수 있도록 열어놓기도 했다.
우리집의 보잘것 없는 대문은 그렇게해서 늘 열려 있게 되었으며 우리식구의 마음도 한결 밝아지고 있었다.

<부산시 부산진구 동평동458의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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