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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롯데와 현대 차, 16m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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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대한민국 최고층 빌딩’ 타이틀의 주인공이 2021년을 전후해 현대자동차그룹으로 넘어갈 공산이 커졌다. 현대차그룹은 지난달 30일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에 571m 높이의 115층 초고층 사옥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를 짓겠다는 사업 제안서를 서울시에 제출했다. 당초 알려진 층수(105층)보다도 10개층이 더 올라간다. 현대차의 제안대로 GBC가 완성되면 내년 완공 예정인 롯데그룹의 제2롯데월드(555m)보다 16m 정도 높다. 현대차의 통합 신사옥이 현대차그룹의 제안대로 완공될 경우, 제2롯데월드의 국내 최고층 건물 타이틀은 4~5년 정도만 유지할 전망이다. 잇따라 초고층 건물 건설 계획이 발표되면서 ‘마천루의 꿈’도 다시 비상하기 시작했다.

5년 이내 주기로 최고층 빌딩 순위 바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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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2010년 이후 국내에도 잇따라 초고층 건물이 세워지면서 ‘최고층 건물’ 타이틀의 주인공도 5년 이내 주기로 바뀌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은 높이 305m를 자랑하는 인천 송도 동북아무역센터(NEAT) 타워다. 올해 최고층 건물 타이틀을 갖게 된 NEAT 타워는 부산 해운대 ‘위브더제니스(80층·299.9m)’를 높이에서 5.1m 제쳤다. 2011년부터 4년 간 최고층 건물 자리를 지켜왔지만 송도 동북아무역센터에 타이틀을 내주게 된 셈이다. 다만 아직도 층수 기준으로는 위브더제니스가 NEAT타워(68층)보다 12층 더 높다. NEAT 타워도 예정대로라면 국내 최고층 건물 타이틀을 2년 남짓만 유지하게 된다.

 국토부 조사 결과를 기준으로 국내 상위 10위 건물(높이 기준)을 지역별로 나눠보면 부산이 6개로 가장 많았다. 부산의 ‘부촌’이라 할 수 있는 해운대구 센텀시티에 초고층 주상복합 단지(위브더제니스·아이파크)가 몰려 있어서다. 서울은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 3동(284m)이 5위, 도곡동 타워팰리스 G동(262.8m)이 9위, 목동 현대아이페리온(250.7m)이 10위에 올랐다. 국내 전체로도 초고층도시건축학회(CTBUH)에 따르면 지난해 완공된 200m 이상 초고층 빌딩은 전 세계적으로 모두 97동으로 역사상 최다 기록을 세웠다. 지역별로 보면 아시아가 74동, 중동이 11동, 북미가 6동 등이다. 가장 많이 지은 나라는 중국이다. 지난해에만 58동을 올려 7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국내에선 ‘초고층 및 지하연계 복합건축물 재난관리에 관한 특별법’에서는 50층 이상 200m 이상의 건물을 초고층 건물로 분류한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NEAT 타워와 부산국제금융센터(63층·289m) 등 초고층 건축물 2개 동이 새로 지어지면서 초고층 건축물(50층 이상, 50층 이상 기준)이 모두 89개 동으로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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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1m 높이로 국내 최고층 ‘랜드마크’를 계획중인 현대차그룹은 이르면 2021년까지 GBC를 완공한다는 계획이다. 삼성동 한전부지는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 등 현대차그룹 3개사가 지난해 9월 삼성전자와의 입찰 경쟁 끝에 10조5500억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낙찰받은 땅이다. 현대차그룹은 이곳에 그룹 본사 사옥 등으로 사용할 지상 115층(높이 571m·용적률 799%) 사옥 1동과 전시 컨벤션, 호텔, 백화점 용도의 62층 짜리 2개동 건물을 짓겠다는 복안이다.

 특히 이 땅에는 정몽구(77) 현대차그룹 회장의 의지가 반영돼 있다. 그는 입찰 직전 “지금 이 땅을 놓치면 앞으로 기회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정 회장이 바라는 현대차의 미래는 그룹의 얼굴을 ‘울산 공장’에서 서울 한복판인 ‘강남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로 바꾸는 것이다. 그저 차를 많이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신뢰받는 브랜드로서 현대차를 업그레이드 한다는 게 정 회장의 비전이다. GBC는 30여 계열 기업들의 통합 사옥인 동시에 자동차를 주제로 하는 문화·관광 시설, 컨벤션센터 등을 아우른다.

정부, 한전부지에 환류세 제외할 방침

 ‘내수 활성화’를 당면 목표로 내건 정부도 현대차그룹이 구상하는 초고층 GBC 프로젝트의 든든한 ‘후원군이다. 기획재정부·국토교통부 등 관련 부처는 지난달 18일 ‘7차 투자활성화 대책’을 발표하면서 현대차그룹이 내년 9월까지 삼성동 통합 신사옥 공사를 시작할 수 있도록 인·허가 절차를 1년 내 마무리하겠다고 공언했다.

 현재 한국전력 부지는 용적률(대지면적 대비 건축물 총면적의 비율) 250%가 적용되는 일반주거지역으로 이 부지를 용적률 800%인 상업지역으로 바꾸려면 통상 2~3년이 걸린다. 서울시 등과 사전협상을 해야 하고 지구단위계획, 교통·환경 영향평가도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허가 절차를 1년 이내로 단축하겠다는게 ‘대기업 발 투자 활성화’를 희망하는 정부의 정책 목표다.

 이뿐만 아니라 기재부는 현대차그룹이 한전부지에 세울 사무공간뿐만 아니라 전시·컨벤션 공간도 ‘업무용’으로 인정해 ‘기업소득 환류세제’ 과세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지난해 제정된 기업소득 환류세제는 당기 소득의 80% 이상을 투자·임금증가·배당액 등으로 쓰지 않을 경우, 미달액의 10%를 세금으로 내야 하는 제도다. 자기자본 500억원을 초과(중소기업 제외)하거나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소속 법인이 과세 대상이다.

 만약 삼성동 한전 부지 매입 전체를 투자로 인정받을 경우 현대차그룹은 최대 5500억원 안팎의 세금을 줄일 수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현대차그룹 신사옥이 조기 착공돼 다른 대기업들 사이에서도 ‘투자 붐’을 이끌어내겠다는 취지”라면서 “정부는 GBC 공사가 본격화되면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와 현대차 측의 바람대로 삼성동 GBC가 완공될지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제 3의 당사자’인 서울시가 정부-현대차 측 계획에 불편한 내색을 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제2롯데월드 공사현장에서 연이어 발생한 안전사고로 대형 사업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계속되는 점도 서울시 입장에선 부담이다. 여기에 서울시도 지난해 4월 강남 코엑스·한전 용지·잠실운동장 일대를 묶어 국제업무·마이스(MICE)·스포츠·문화엔터테인먼트 중심의 ‘국제교류 복합지구’로 만들겠다는 독자적인 개발안을 제시한 바 있다.

서울시-현대차 랜드마크 사업 불발 경험도

 현재 서울시는 한전 부지 가운데 40% 정도를 기부 채납 형태로 시에 기증하든지 아니면 1조5000억~2조원 가량을 기부 채납금으로 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대차는 기부채납과 교통대책 등 공공기여분으로 1조원 정도를 써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서울시와 기부채납과 개발에 대해서는 앞으로 협상해 나갈 계획”이라며 “낙찰만 받은 현 시점에서는 어떤 형태가 될지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실 서울시는 초고층 건축물 프로젝트에 나섰다가 잇따라 실패한 경험이 있다. 서울시는 2008년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센터(DMC) 부지에 대우건설을 비롯한 민간사업자와 함께 100층이 넘는 ‘랜드마크’를 짓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양측 의견이 갈려 2012년 6월 프로젝트가 백지화됐다. 서울시는 공공시설 사유화 방지를 위해 133층의 80%를 업무시설로 지어야 한다고 했고, 민간사업자들은 상암동 지역의 업무시설이 이미 포화상태라면서 주거시설 비중을 늘리자고 맞섰기 때문이다. 현대차와도 삼성동 한전부지에 앞서 대규모 랜드마크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틀어진 적이 있다. 현대차는 2006년부터 서울 성수동 뚝섬에 110층짜리 글로벌비즈니스센터를 짓기 위해 기부채납 비중 등을 놓고 서울시와 수년째 협상을 해왔지만, 서울시 요구대로는 사업성을 맞출 수 없다고 판단해 2013년 협상이 최종 중단됐다.

 ‘초고층의 저주(skyscraper curse)’를 뛰어넘는 것도 현대차그룹이 GBC를 세우면서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다. 현대차가 롤모델로 삼는 독일 폴크스바겐의 자동차 테마파크 ‘아우토슈타트’에는 매년 방문객 200만명이 찾아온다. 반면 제너럴모터스(GM)는 1974년부터 7년 동안 초고층 사옥 ‘르네상스 타워’를 만든 이후부터 도요타 등 경쟁 업체에 밀리기 시작했다. 김기찬 카톨릭대 교수는 “비즈니스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입지(location) 싸움”이라며 “한류 관광객 2000만 시대에는 MICE(전시박람회)산업이 크게 성장하기 때문에 이를 내다보고 건설한다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부동산학과)는 “현대차 신사옥도 자동차뿐만 아니라 백화점·호텔 등 현금 흐름을 창출할 수 있는 다양한 사업과 연계해 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민·황정일 기자, 세종=이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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