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천번째로상봉한 3남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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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KBS이산가족찾기 3천번째 상봉가족은 33년만에만난 임숙란(44·여·대구시 율하동91)·육영 (42· 서울시흥본동904) 동옥(40)씨 세남매였다.
『지나간 33년이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우리 남매가 이렇게 만나고 보니 피난길에 헤어진 부모님 생각이 더욱 간절해지는군요』
26일상오 3천번째로 만난이들 세 남매는 기쁨도 잠시, 부모 이별의 한에 또다시 울어야했다.
숙란씨는 대구율하동사무소에서 이산가족 명부를 4일동안 열람하다 25일 낮 동생들과 같은 이름을 발견했다.
숙란씨는 서울에 사는 육영씨 형제에게 전화로 확인한뒤 곧바로 야간열차를 타고 서울로 달려갔다.
숙란씨는 첫눈에 두 동생의 얼굴을 알아볼수 있었다.
숙란씨가 평소 그리던 부모님의 얼굴 모습을 두 남동생의 얼굴에서 읽을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장년에 접어든 육영씨는 어머니의 얼굴 그대로였고, 막내 동옥씨는 아버지를 쏙뺀 모습이었다.
그러나 숙란씨가 머뭇머뭇하자 육영씨가 『헤어질 당시 남대문국민학교를 다니던중이었고, 아버지 임낙두씨(70)가 서울 삼각지에서 어린이학용품 (콤파스) 공장을 운영했었다』고 덧붙여 비로소 같은 혈육임을 확신하게됐다.
이들 세 남매가 헤어진것은 6·25직후인 50년7월초순.
당시 남대문국교 5학년이던 숙란씨는 부모형제와 함께 고향인 서울동자동을 떠나피난길에 올랐다.
이들 새 남매는 서울을 벗어나면서 밀고 밀리는 피난민들 틈에서부모와 헤어진것이 비극의 시초가 되었다.
졸지에 고아가 된 세 남매는 피난민 대열에 섞여 대전역에 도착했다.
당시 숙란씨는 12살이었고, 두 동생은 10살과 8살이었다.
대전역 앞에서 숙란씨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어린 두동생마저 놓치고 말았다.
피난민 대열에서 어린 동생들을 찾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육영씨 형제는 군용열차를 타고 전남 광주로 갔고 광주 무등고아원에서 5년간자랐다.
육영씨가 15살되던해 봄, 어디엔가 부모와 누나가 살아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이들 형제는 고아원을 나와 무작정 상경했다.
서울 신도림동에서 행상을 하며 형제는 혈육을 찾기 위해 63년 「이 사람을 아시나요」 라디오 프로에도 출연했고 신문광고를 내기도했으나 번번이 허사였다.
육영씨는 그뒤 27살되던 68년 중매결혼했고, 동생 동옥씨도 그이듬해 결혼, 함께 2남1녀를 두었다.
두 동생을 놓쳤던 누나 숙란씨는 대구로 피난갔고, 역시 피난길에 자녀를 모두 잃은 김춘섭씨(65·가내공업) 부부의 수양딸로 들어갔다.
친딸처럼 돌봐주는 김씨부부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라다 66년 (당시 28세) 결혼, 1남l녀를 두고있다.
그동안 자녀들의 뒤치다꺼리로 혈육을 찾지못했다는 숙란씨는 이번 KBS「이산가족찾기」생방송이 방영되자 혈육과의 상봉환상이 자주 떠올랐다고 한다. 꿈자리에서도 부모와 두 동생의 얼굴이 비치는등 잠자리가 어수선했다.
지난 10일 육영씨는 「누나를 찾는다」는 피킷을 들고 KBS 이산가족찾기에 출연했지만 숙난씨는 이를 보지 못하고 지나쳤다가 이산가족 명단을 뒤지다 동생을 찾은것.
숙란씨는 『생사조차 모르는 부모님이 어디엔가 반드시 살아계실것』이라며 두동생과 함께 부모님을 꼭찾기로 다짐했다.<방원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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