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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불통 … 모든 세대가 "정치 얘기만 나오면 대화 안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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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사진작가 박병문씨(56.오른쪽)가 서울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광부였던 아버지 박원식씨(87)와 나란히 서 있다. 뒤에 걸린 사진은 박 작가가 찍은 강원도 태백 탄광촌 광부의 모습. 박 작가는 “어린 시절 아버지는 탄광 일을 마치고 항상 새까만 얼굴로 퇴근하셨다”고 회상했다. [사진 박병문]

“가치관 충돌로 혼란스러울 때가 많아요. 어머니가 집에 오셨을 때는 주방에 못 들어가고 아내와 있을 때는 설거지라도 해야 하죠. 또 상사가 늦게 퇴근할 때는 기다려주면서 부하 직원이 간다고 하면 용인해줘야 하니….”

 김학재(54) 다산아카데미 대표는 “우리는 대표적인 낀 세대”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대학생인 딸들에게 ‘노력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는 순간 구시대 아버지가 돼버린다”며 “내 아버지 세대는 열심히 일하면 다 성공을 거뒀지만 이젠 땅값 오른 사람이 성공한 시대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자식들과 나눌 수가 없다”고 털어놨다.

 김 대표가 느끼는 혼란은 우리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느끼는 문제다. 광복 이후 70년 세월의 변화만큼이나 세대 간 차이도 커졌다. 가치관의 변화와 정보 격차는 부모·자식 사이의 대화를 가로막는다. 지난 12∼14일 전국 20대 이상 남성 137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본지 여론 조사 결과 45∼55세에 해당하는 ‘86세대(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세대)’는 “아버지와 정치(25.0%)·정보통신(21.1%) 이야기를 할 때 말이 안 통한다”고 응답했다. 동시에 20∼30대 세대도 “86세대인 아버지와 정보통신(17.9%)·정치(15.4%) 이야기 할 때 말이 안 통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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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대 간 서로를 바라보는 시각 차이도 크다. 70~80세대에 대한 이미지 조사에서 86세대인 아들들은 46.4%가 ‘희생’을 꼽았지만 70∼80대 스스로는 ‘희생’(27.8%)보다 ‘근면·성실’(37.6%)이라고 답한 비율이 높았다. 86세대에 대한 이미지 조사도 큰 차이를 보였다. 86세대 스스로는 ‘민주(17.7%)’ ‘혼란(11.2%)’ ‘자유(8.2%)’ 등을 꼽았지만 20∼30대는 각각에 대해 7.8%, 3.5%, 3.2%만 인정했다. 또 ‘권위’(1.9% 대 8.9%), ‘고립·불통’(1.4% 대 5.8%) 등 항목도 인식 차이가 컸다. 86세대는 자신들의 이미지를 민주와 자유로 해석했지만 자녀 세대에게는 권위와 불통으로 비친 것이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세대 갈등 가운데 특히 86세대와 20∼30대 사이의 갈등은 두 세대가 일자리·집값·연금 등을 두고 이해가 상충하면서 정서적인 갈등 수준을 넘어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고 짚었다.

 설문 조사 결과는 세대 간 소통을 가능하게 할 희망의 씨앗도 보여줬다. 바로 ‘가족’이다. 70∼80대 세대, 86세대, 20∼30대 세대 모두 삶의 가중치를 묻는 질문에서 가족을 첫째로 꼽았다. 또 “부모의 노후생활비는 누가 대야 하는가”란 질문에 70~80대 세대 58.6%가 “부모 스스로”라고 응답한 반면 86세대 53.6%, 20~30대 세대 67.1%는 “자녀”라고 응답해 서로 상대 세대를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가족 안에서 소통이 이뤄질 때 세상을 향한 눈도 부드러워진다. 사진작가 박병문(56)씨가 그 사례다. 그는 20여 년간 태백 탄광에서 광부로 일한 아버지 박원식(87)씨의 삶을 그리기 위해 10년 전부터 다큐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병문씨는 “아버지가 존경스럽다. 아버지의 위치에서 해야 될 일을 잘하셨다. 내가 아이들을 낳아 키우면서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됐다”며 “아버지가 일한 탄광촌 풍경을 사진에 담으면서 광부들과 이야기를 많이 했다. 탄광이 없어지며 떠나는 광부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 그들도 다 아버지들인데…”라고 말했다.

 설문 조사에서 국가에 대한 생각이 엇갈리는 점도 주목된다. 70~80대 세대는 ‘가족-국가-나-일’ 순으로 가중치를 줬고, 86세대와 20~30대 세대는 모두 삶의 우선순위를 ‘가족-나-일-국가’ 순으로 꼽았다.

  이동원 가족아카데미아 원장은 “역사적으로 한국은 가족을, 일본은 국가를, 중국은 개인을 중시하는 문화가 있었다. 일본이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인의 국가관을 이용했듯 우리도 가족애를 활용, 상호 존중하고 소통하는 문화를 확산시켜 세대 갈등 해결의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별취재팀=이지영·김호정·한은화·신진 기자,
사진=신인섭·오종택·최승식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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