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을 주목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대법관 제청자문위원회가 9명의 대법관 후보자를 선정해 이용훈 대법원장에게 전달했다. 후보 중에는 법원 내 엘리트 법관과 지역.여성 법관은 물론 진보 성향의 인물, 비서울대 출신, 법학 교수 등이 고루 포함돼 있다. 그러나 후보들의 면면을 보면 진보 성향이 우세하다. 이 대법원장은 이들 가운데 3명을 선택해 오늘 중 노무현 대통령에게 임명제청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번 대법관 인선은 이용훈 대법원장이 취임 후 처음으로 행사하는 임명제청 권한이다. 내년 7월까지는 8명의 대법관이 교체된다. 지금까지 대법관이 맡던 법원행정처장을 법원장급으로 낮추게 되면 전체 대법관 12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바뀌는 것이다. 따라서 이 대법원장이 어떤 인물을 제청하느냐에 따라 대법원의 색깔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 대법원장은 국회 인사청문회 등을 통해 대법원 구성을 다양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최고 법원으로서 대법원은 서로 다른 이념과 가치, 갈등.분쟁을 녹여내 하나로 만드는 용광로여야 하기 때문이다. 대법관 후보 추천을 전후해 진보 성향의 단체들도 일제히 '다양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문제는 이들이 말하는 '다양화'가 자신들과 성향이 맞는 '코드 인사'의 다른 이름이라는 점이다. 심지어 어떤 시민단체는 대법관으로 추천한 사람을 비공개토록 한 대법원 내규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을 압박이라도 하듯 명단을 발표해 버렸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법원은 법에 의한 지배, 즉 법치가 실현되도록 정부를 견제하는 곳이다. 또 각종 분쟁과 갈등의 최종 조정.심판자로서 개인생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미국에서 연방대법원장뿐 아니라 한 명의 연방대법관 선출 문제로 몇 달씩 논란을 빚고 검증을 거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헌법재판소가 별도로 있는 우리나라의 대법원과 미국의 연방대법원은 그 역할에서 차이가 있다. 하지만 대법원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법치를 수호할 마지막 보루다. 요즘처럼 실정법 적용에까지 이념적 공세가 거센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오죽하면 지난 10일 법원을 떠난 이용우 전 대법관이 퇴임사에서 "통일과 민족에 대한 열정이 지나친 나머지 자유민주주의의 가치가 훼손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고 했을까.

대법원 구성을 변호사.교수.지역법관.여성 등으로 다양화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법관은 어떤 외압에도 굴복하지 않고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로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