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던지는 한마디가 큰화를 부른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한마디 무심코 던진 그말들이 얼마나 큰 일을 저지르게 되는지….
부모나 교사의 언어 구사는 진정 조심성 있어야하지 않을까?
오래 전의 일이다.
자목연이 활짝 피어있는 한가로운 교정을 내다보고 있던 오후, 핏기를 잃는 소녀가 상담실을 노크했다.
『이 시를 해석해 주세요, 선생님』
그녀는 구기구기한 종이쪽지를 불쓱 내밀었다.
임이 부르시면 달려가지요
금띠로 장식한 치마가 없어도
진주로 꿰맨 목도리가 없어도
임이 오시라면 나는 가지요
사랑에 들뜬 소녀였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그녀는 자주 상담실을 찾아왔다.
그리고는 말도 없이 내 얼굴만 쳐다보다가 가고는 하였다.
둘이 퍽 익숙해진 어느날, 그녀는 수업시간을 버리고 도망쳐 상담실로 왔다.
『어떻게 하지오 제가 H선생님을 좋아하는걸 선생님들이 아시니…지금 X선생님이 저를 노려보시며 「엉덩이에서 뿔들이 났지. 기혼선생님을 좋아하면 어떻게 할거야? 이제 죽었다 죽어」라고 비웃었어요.』
그녀는 한참 감자코 있다가 『어제 저녁에 「너희같이 못된것은 나가 콱죽어, 죽어버려. 집안 망칠것같으니…」하셨어요. 무서워요, 저는 요새 잠을 이루지 못해요, 선생님…』
그녀는 공포에 떨기까지 하였다.
선생님이나 어머님이 무심코 던진 말들인데 이소녀는 몹시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다.
그런 일이 있은다음 그녀는 교실아닌 상담실에서 멍청한 날을 보내는 날이 잦았다.
그리고 몇몇 해괴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마침내 그녀는 휴학을 하고 병원 신세를 지게까지 되었다.
병원에서 내집으로 전화를 걸고, 때로는 병원에서 빠겨나와 내집으로 달려와서 내집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기도 했다.
그녀로서는 중대한 위기였다.
지금생각하면 새삼스럽게 겁이 난다.
그녀는 완쾌해서 복학을했고 졸업해서 학교를 떠났다.
정말 다행한 일이다.
아직도 가끔 그녀가 생각나는 것은 무슨 까닭인지....? 「임이 부르시면 달려가지요」하던 그녀가….
무심코 던지는 한마디의 말이 때로는 이런 엄청난 결과를 부른다는 것을보여준 실례였다.
실로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에 있는 학생들에게는 부모나 교사의 말한마디도 조심성이 있어야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