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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종문의 스포츠 이야기

진심과 라인업 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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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종문
프로야구 NC다이노스 콘텐트본부장

지난해 3월 어느 날 NC가 롯데와의 시범경기에서 맥없이 지고 나서 생긴 일이다. 빈틈이 많이 보여 팀 분위기가 처졌다. 김경문 감독이 고참 선수 여덟 명을 따로 불러 식사했다. 마칠 무렵 미리 준비한 이야기를 감독이 꺼냈다. 투수 박명환(38)도 그 자리에 있었다. 통산 102승을 거둔 베테랑이지만 2012년 LG에서 방출된 뒤 재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김 감독은 “오늘은 내가 감독에 앞서 네 선배요 형으로 말한다. 네가 멋진 모습으로 나와야 팬과 후배에게 부끄럽지 않다. 고참이라도 2군으로 가라”고 말했다. 시즌 개막을 목전에 두고 아쉬움이 클 텐데 오히려 박명환은 담담했다. “전지훈련 두 달간 기회를 받았고 후배들보다 나은 게 없었다. 그간 묵묵히 지켜보신 뒤 야구인생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준비하라는 감독님 말씀에 진심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진심은 어떻게 표현할까. 훈련방법, 인터뷰, 경기 중 작전까지 감독의 모든 행위에 진심이 들어가 있다. 감독이 적는 라인업(line up) 카드도 그중 하나다. 어떤 선수의 이름을 출장명단에 적는다는 건 감독이 “지금 누구를 믿는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어느 감독은 “기도하는 심정으로 명단을 짠다”고 말한다.

 진심만이 최선일까. 김정준 전 SBS 해설위원은 “감독은 당장 앞에 놓인 상황뿐 아니라 멀리도 봐야 한다. 여러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데 라인업 카드만 봐선 선수에게 진심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감독의 진심이라고 해서 모든 선수가 이해하기도 어렵고 일방적으로 강요할 수도 없다.

 무엇이 필요한가. 마음의 소통이다. 신중하되 배려하고 공정해야 감독의 진심이 전달된다. 그래야 구석에 앉은 후보 선수도 결심을 다지고 달려든다. 감독은 그 선수의 눈빛을 읽어야 한다. 팀 스포츠에서 한 장면, 한 경기를 위해 뛰는 백업 선수의 마음을 사는 일이 풀 시즌을 치르는 주전선수를 챙기는 것만큼 중요하다. 마음이 결합해야 팀 워크가 살고 강 팀이 된다.

 감독의 진심, 선수의 결심이 보태지면 팀이 움직인다. 합심(合心)의 순간이다. 중학교 물리시간에 배운 ‘힘의 합성’을 적용하면 합심은 두 마음(진심, 결심)을 가로·세로 축으로 놓고 연결시킨 평행사변형의 대각선이다. 진심과 결심의 시각차를 줄여야 합심이 커진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사는 세상의 라인업 카드는 제대로 써 있는지, 서로의 진심과 결심을 제대로 모으고 있는지 걱정이 쌓이는 요즘이다.

김종문 프로야구 NC다이노스 콘텐트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