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개혁' 카드 꺼낸 여권] 집단 항명이냐 조직 안정이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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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명 대검 차장이 16일 오후 긴급간부회의를 마치고 대검찰청을 나서고 있다. 이 회의에서는 김종빈 검찰총장의 사표수리 뒤 일어날 수 있는 내부혼란을 수습하기 위한 방안이 논의됐다. 김성룡 기자

김종빈 검찰총장의 사표가 16일 수리됨에 따라 검찰이 조직 안정이냐, '검란(檢亂)'에 휘말리느냐의 기로에 서게 됐다.

사상 초유의 지휘권 발동 사태가 '지휘권 수용-김 총장 퇴진'으로 일단락됐지만 천정배 장관의 지휘권 행사에 대해 검찰 내부의 반발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일선 검사들 사이에선 "이번 사태의 발단은 천 장관이 제공했는데 왜 총장만 사표를 내느냐"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내부 반발이 집단항명으로 비춰져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이유로 조직 안정에 주력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 집단 항명사태 나타날까=일선 검사들은 천 장관의 이번 지휘권 발동을 검찰 장악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또 이번 사태가 선례가 돼 정권의 검찰수사 개입이 잦아질 것이라는 게 상당수 검사의 우려다.

특히 적잖은 검사들이 문재인 민정수석이 이날 검찰의 반발을 '조직 이기주의'로 비난하고,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씨 사건 처리를 놓고 "국제적 망신" 등의 표현을 쓴 데 대해 불쾌감을 토로하고 있다.

또 검사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이날 "흔들리지 말고, 장관이 중심이 돼 사태를 잘 수습하라"며 천 장관에 대한 깊은 신뢰를 표시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천 장관에게 힘을 실어줌으로써 검찰 길들이기가 더욱 노골화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같은 반발 기류가 집단 항명 사태로 전개될 수 있을지는 이번 주 초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현재 평검사들의 좌절감이 심각한 상태"라며 "17일 출근해 평검사회의 개최 쪽으로 의견이 모일 경우 검사들의 집단적 의사가 표출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일선 검사들은 천 장관이 이번 사태를 통해 지휘 능력이 크게 손상됐다고 보고 있다. 이와 관련,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김 총장은 사표를 통해 지휘권 발동을 엄중하게 비판한 것"이라며 "검찰 조직의 신뢰를 잃게 된 천 장관이 장관직을 수행할 명분이 없다"고 지적했다.

◆ 전면 수용하나=내부단합과 조직안정에 주력하자는 온건론도 적지 않다. 검찰이 집단행동에 나설 경우 국민에게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집단반발은 역풍에 부닥칠 수 있다. 여권이 검.경 수사권 조정, 공직부패수사처(공수처) 설치 등의 현안에서 검찰 권한의 대폭 축소에 나설 수 있는 명분을 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청와대가 이날 "민주적 절차에 의한 지휘권 발동에 대해 사표를 낸 것은 부적절한 조치"라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상명 대검 차장 등 일부 간부가 이날 "총장을 잘못 보좌한 책임을 지겠다"며 동반사퇴 의사를 피력했다가 항명으로 비칠 수 있다는 이유로 다시 거둬들인 것도 이 때문이다.

대검의 한 간부는 "이런 땐 대외적 발언을 삼가는 등 '침묵'이 최선"이라며 "국민에게 검찰이 믿음직스러운 사정기관이라는 이미지를 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후임 인사와 관련, 검찰로서는 흔들리는 검찰 조직의 안정을 위해 내부 인사가 발탁되길 바라고 있다. 그러나 이번 파동을 계기로 청와대와 여권이 검찰권에 대한 견제 필요성과 지속적인 검찰 개혁을 위해 외부 인사를 임명할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떠오르고 있다.

신임 총장은 인사 청문회 등을 감안할 경우 임기가 2007년 대선 한 달 전인 11월까지여서 참여정부의 마지막 총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개혁 성향이 강한 인물이 고려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검찰 출신이 아닌 인사가 전격 발탁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든 상황이다.

하재식 기자 <angelha@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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