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혜걸 의학전문기자의 우리집 주·치·의] 아스피린의 효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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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아스피린은 통증을 가라앉히는 진통(鎭痛), 염증을 없애는 소염(消炎), 열을 내리는 해열(解熱)이라는 세 가지 작용을 동시에 지닙니다. 아스피린과 더불어 가장 널리는 쓰이는 진통제인 타이레놀의 경우 진통과 해열이란 두 가지 작용만 있는 것에 비해 아스피린은 소염 작용까지 있습니다.

따라서 두통처럼 염증이 동반되지 않은 통증엔 속쓰림 등 위장 장애가 덜한 타이레놀이 좋지만 발갛게 붓고 아픈 관절염 등 염증이 동반된 통증엔 아스피린을 고르는 것이 좋다고 하겠습니다.

놀라운 것은 아스피린에서 마치 양파껍질 벗겨지듯 새로운 효능이 규명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혈전(血栓) 생성을 억제하는 효능입니다. 혈전이란 혈관에서 만들어지는 피떡 또는 혈관 부스러기로 혈관을 좁게 만들어 심장병을 일으키거나 아예 떨어져 나올 경우 뇌혈관을 막아 뇌졸중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스피린을 소량 복용할 경우 피를 굳게 하는 혈소판의 작용을 차단해 혈전 생성을 억제합니다. 심장병 발작으로 수차례 쓰러져 수술을 한 전 러시아 대통령 보리스 옐친에게 처방된 약도 다름 아닌 아스피린이었습니다.

아스피린은 암 예방에도 관여합니다. 실제 대장암과 전립선암.난소암 등 일부 암에선 아스피린을 복용할 경우 발생률이 떨어진다는 믿을 만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과거 아스피린을 많이 복용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암에 덜 걸린다는 것이지요. 이유는 암을 일으키는 중요한 요인이 바로 만성적인 염증이며 아스피린으로 염증을 조기에 차단하면 염증 때 나타나는 세포 복구과정에서 암세포와 같은 불량품이 만들어질 확률이 줄어들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아스피린은 치매 예방에도 관여합니다. 아스피린을 많이 복용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치매에 걸릴 확률도 줄어든다는 것이지요. 치매가 뇌혈관의 염증 및 손상에서도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닙니다.

최근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아스피린 국제학회에선 주목할 만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영국 레인연구소 데렉 길로이 박사에 따르면 만병통치약처럼 작용하는 아스피린의 비밀이 산화질소에 있다는 것입니다. 아스피린이 혈액 중 산화질소의 생성을 유도하는 데 이 산화질소가 각종 신진대사를 선순환으로 이끄는 핵심 고리 역할을 한다는 것이지요.

만일 여러분이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 컨디션이 떨어져 있을 때 중요한 과제나 시험이 닥친다면 가장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의학적 방법이 아스피린 복용입니다. 저도 몸이 찌뿌드드하고 개운치 않을 때 중요한 일을 해야 한다면 아스피린을 복용합니다. 다만 아스피린은 궤양 등 위장 장애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또 어린이들의 경우 드물지만 라이 증후군이란 뇌 합병증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어린이들은 복용해선 곤란합니다. 남용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아스피린을 선용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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