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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과 문화

진정한 변화의 출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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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우리는 각자 어떤 면에서든 인생의 변화를 꿈꾼다. 변화란 무엇일까? 세상의 수많은 변화 가운데 자기 자신을 극복하는 변화만큼 어려운 일이 있을까? 그것처럼 멋진 일이 있을까? 그러나 자신을 극복한 인생의 변화가 자신에게 혹은 그가 속한 가정이나 사회에 생명을 주기 위해서는 내면 깊은 곳에서의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20대에 술과 담배를 배우셔서 근 40년 동안 술과 담배에 젖어 지내셨던 분이다. 아버지께서 술과 담배를 끊어 보려고 노력하셨던 적도 있었지만 일 년을 넘기신 적이 없다고 기억한다. 일주일에 한두 번 술에 만취하셨던 것 같고, 담배는 하루에 세 갑 정도를 피우셨으니 거의 중독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께서 약 15년 전 어느 날부터 술과 담배를 모두 끊으셨다. 우리 가족은 과연 아버지의 금주와 금연이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정말 꿈처럼, 기적처럼 아버지께서는 주위의 모든 사람을 놀라게 하셨다. 아버지께서는 지금까지 단 한 모금의 술도, 한 개비의 담배도 입에 대지 않으셨다.

나는 몇 해 전 고향에 내려가서 집안과 가까운 이웃 아주머니로부터 아버지께서 술과 담배를 단숨에 끊으신 사연을 알게 되었다. 그분은 이런 말씀을 전해 주셨다. "수녀님의 아버님께서는 수녀님의 오빠가 사제가 되겠다고 신학교에 가고 수녀님이 수녀원에 입회하자 자녀를 위해 가장 좋은 선물을 하느님께 드리고 싶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시다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지만 가족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술과 담배를 끊어야겠다고 결심하셨답니다."

사람들은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변화하는 것은 아닐까? 얼마 전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미혼모의 집인 '마리아의 집'에서 퇴소자들의 모임이 있었다. 그날 우리는 진정한 인생의 변화를 맞이한 한 여인을 만날 수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 그녀의 부모님께서 이혼을 하시면서 어느 양친에게도 기댈 수 없는 상황에서 그녀는 동생과 함께 상경하여 미용기술을 배워 취직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생활이 어려워지자 친구의 말을 듣고 미용실보다 훨씬 수입이 많은 성매매 일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그러던 가운데 아기 아빠를 만났고 임신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아기 아빠는 낙태를 하라며 연락처를 바꾸고 떠나갔다. '마리아의 집'에 처음 왔던 그녀는 세상에 대한 분노와 서러움에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아기를 빨리 낳아 입양 보내고 다시 성매매 일을 해서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러나 '마리아의 집'에서 아기를 낳고 젖을 물리고 입양을 보내는 과정에서 그녀는 변화하기 시작했다.

퇴소자들의 모임에 참석했던 그녀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처음 입소했을 때의 불안하고 적개심에 불타는 모습은 사라지고 평화로운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녀는 손수 수를 놓아서 만든 가시관을 쓴 예수님의 액자를 선물로 들고 왔다. 이제는 복지관에서 미용 선생으로 일하고 있는 그녀는 수입은 적지만 꿈은 더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근본적인 변화를 유발하는 동기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우리 아버지께서 술과 담배를 모두 끊으실 수 있었던 자식에 대한 사랑과, 사랑받는다는 체험을 통해서 자신이 참으로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된 미혼모가 어려운 결단을 내리고 새 삶으로 출발했던 모습을 보면서 사랑만이 인생의 참다운 변화를 가져오는 힘이 아닐까 생각했다.

배 마리진 착한목자수녀회 수녀 한국틴스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