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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이승만대통령(12)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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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우리의 17연대가 합천을 탈환했다. 적은 이곳에서 30마일 떨어진 곳에 있다. 게릴라들은 구두닦이 소년들같이 살금살금 시내로 잠입해들어왔다.
어제 하루에만 4명의 게릴라를 체포했다. 오늘 아침에 체포된 적의 포로1명은 그의 바지속에 총을 감추고 있었다. 이 포로 얘기로는 부산에만 80명의 게릴라가 잠입해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곳 대구에도 있을 것이다.

<게릴라, 곳곳에 잠입>
이게릴라들이 그동안 혼란을 야기시킨 장본인들이었다. 하동에도 30여명의 게릴라가 있고 수백명의 게릴라들은 산속에 숨어 있었다.
우리는 며칠전 서북청년단을 대구주변 산속에 파견, 그곳에 있는3개의 게릴라조직을 정탐케했다. 미군은 이들에게 카빈총을 공급했다.
우리는 또다시 악몽의 밤을 맞이했다. 특히 밤에 나타나는 악마를 생각하면서 어느 누가 잠을 잘수가 있단 말인가?
미국인들은 퇴각할때 사용할 비행기와 선박을 갖고 있지만 이모든 한국인들은 어디로 가란 말인가?
변박사의 예를 들어보자. 그는 가족들을 뒤에 남겨두고 떠나왔다.
그는 아무것도 몸에 지니지 않은채 혈혈단신 살던 도시를 빠져나왔던 것이다.
「노블」박사는 그를 지프에 태워 수원까지 데려다 주었다. 변박사는 평생을 공산주의자들에 대항해서 싸운 사람이다. 만일 공산주의자들이 그를 발견하기만하면 아마도 즉각 처형할것이 뻔하다. 그들은 한국정부에 충성스런 사람들을 제일먼저 죽여왔던 것이다.
변박사같은 사람은 수천, 수만이나 된다. 만일 공산군이 한국을 지배한다면 이 충성스런 국민들에게 무슨일이 일어날 것인가.
어떤때는 내 자신도 『내일이면 모든게 잘될것』 이라고 얘기할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대구사수결의 가득>
「무초」대사가 매일같이 말하듯 앞으로 2일간이 매우 중요한 시기가 된것 같다. 「무초」는 우리측이 이기고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이에 대해 『그렇다』 고 대답하면서도 우리가 땅을 잃고 있다고 말했다.
8월2일.
김홍천목사가 오늘 비행기로 일본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있었다.
김목사는 장면대사에게 전할 2통의 편지를 휴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김목사는 우선 마산까지 기차로 가서 가족들을 만난 후에 동경으로 떠나겠다고 계획을 바꾸었다.
불행하게도 나는 김목사가 만일 공산군에 붙잡혔을 경우 그 중요한 편지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것인가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다행히 그는 영어를 할줄 알기때문에 만일 신상에 위험을 느낄 경우 미국인들에게 도움을 청할수가 있을것이다. 그는 믿음직한 사람이긴 했으나 가족들을 만나러 갈때 얼마만한 어려움이 따르는 것인가는 모르고 있었다.
밤이 되자 대통령은 몹시 걱정을 하고 있었다. 누가 대통령의 후계자 역할을 할것인가?
대통령은 끝까지 남아서 대구를 지킬 결의에 차있었다.
오늘아침 국방장관은 유난히 더걱정을 하는것 같다. 적은 사방에서 대구를 향해 진격중에 있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하느님이 기적을 내려주시지 않는한 대구가 적의 수중에 떨어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적은 거창지역에서 밀려오는데 미군은 반대쪽인 대구와 영천사이에 주둔하고 있다. 군사비밀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곳에 얼마나 많은 미군이 주둔중인가를 알지 못했다.
미군이 반대쪽에 포진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아마도 미군들이 필요할 경우 포항으로 퇴각하기 위해서 그예상퇴각로를 지키고 있는게 아닌가 하고 추측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미군들을 그곳에 배치할 이유가 없었다.

<미 "더기다려보자">
미군기들은 밤낮으로 대구주변상공을 날며 폭격을 계속했다. 그러나 적은 교묘하게 위장을 했기때문에 미군들은 그저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국방장관이 와서 한국군 6사단에 대해 대구를 지키도록 명령을 내렸다고 보고했다. 그 이유는 만일, 대구가 적의 수중에 떨어지면 적은 막대한 양의 미군장비와 물자로 부산을 공격, 수일내로 부산도 함락될 우려가있기 때문이었다.
미군의 전술은 가능하면 방어선을 좁게해서 더많은 병력을 방어하는데 동원하려는것 같다. 그러나 적군도 좁은 방어선에 더많은 병력을 동원해서 공격해 올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것 같다.

<대통령은 원기왕성>
이제 적군의 공세를 저지할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군산이나 또는 다른 서해안 어느지점에서 상륙작전을 감행하느것 뿐일것이다.
그렇게되면 적의 후방보급로를 차단하고 증원되는 적의 부대를 되쫓아 버릴수 있을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온종일 이 문제를 논의했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계획만 갖고있었지 움직일 생각은 안하는것 같다. 「무초」 대사는 상륙작전을 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며칠만 더 기다리면 우리 모두가 괜찮을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인들은 많은 일을 해왔지만 항상 너무 늦게 행동하는 것같다.『하느님, 우리를 도와주소서. 장마철이지만 제발 하늘을 개게 해서 우리 비행기가 출격할수 있도록 보살펴 주소서』
날씨는 13일까지 계속 나쁠거란다. 제발 날씨가 좋아져야 할텐데….
대통령은 놀라울 정도로 원기왕성했으나 나는 아무것도 먹을수가 없었다. 『하느님, 제발 이 나라를 구해주소서」
우리는 중요한 편지를 전하려면 꼭 인편을 이용해야만 했다. 미국인들의 배달은 항상 느리기만 했고 그나마 그 편지가 제대로 전달됐는지의 여부도 모두 모를 때가 많았다.
우리애들이 훈련받고있는 캠프를 다녀오는 도중에 대통령은 갑자기 논옆에 차를 세웠다. 그것은 빈논이었다.

<묶음 풀어놨던들….>
옆의 논의 벼들은 무성히 자라 이미 패기시작하는데 오래전 누군가 모를 심다말고 가버린 논이었다. 논 가운데는 아직도 띄엄띄엄 모묶음이 흩어져있고 논두렁에 있는 모묶음은 자라지도 못한채 누렇게 말라있었다.
전투는 오고 가는데 논의 주인은 끝내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대통령은 빈 논둑을 말없이 걸어갔다. 그리고 말라버린 모묶음을 움켜쥔 대통령의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도 울었다.
이윽고 그는 눈을 돌려 『누가 모묶음을 풀어 뿌려만 놓았더라도 조금의 추수는 거둘수 있을텐데…』아쉬운듯 말했다.
대통령은 국민들의 양식과 다가올 추수를 걱정하였다. 『농민들이 공산당한테 추수를 빼앗겨서는 안돼! 우리는 추수전에 땅을 되찾아야 해!』 대통령은 결연히 말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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