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Saturday] 돈 되는 상품 싹쓸이하는 리셀러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22일 오전 9시 나이키 농구화 ‘에어조던’을 구매하기 위해 서울 창천동 현대백화점 유플렉스 신촌점에 몰린 사람들. 김성룡 기자

22일 오전 9시 현대백화점 유플렉스 신촌점 지하 2층은 수백여 명의 인파로 북적였다. 개점도 하기 전에 사람들이 모여든 것은 이날 판매 예정인 나이키 농구화 ‘에어조던 6’와 ‘에어조던 13’을 구하기 위해서다. 에어조던은 나이키가 1985년부터 판매한 클래식 인기 농구화 모델이다. 157켤레의 상품을 준비한 나이키는 인파가 몰려들 것을 예상하고 오전 9시30분부터 선착순 200명에게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추첨권을 나눠주기로 했다. 하지만 전날 오후부터 대기 줄이 형성됐다. 막상 9시30분이 되자 추첨권은 몇 분 만에 동이 났다.

 아르바이트 때문에 에어조던을 사러 가지 못한 대학생 최모(25)씨는 인터넷으로 구매하려고 중고물품 사이트를 뒤졌다.

 오후 4시 최씨는 ‘32만원에 판매한다’는 게시글을 보고 맥이 빠졌다. 정가 21만9000원보다 10만원 넘게 비싼 가격이었다.

 최씨는 “리셀러(Reseller)들이 ‘프리미엄’을 붙일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높게 가격을 매길 줄은 몰랐다”며 허탈해했다.

 인기 있는 상품을 구매한 후 웃돈을 받고 되팔아 수입을 올리는 ‘리셀(Resell)’이 젊은 세대에서 쉽게 돈을 버는 방법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부동산 투자 등과 달리 시간과 정보만 있으면 가능하고 비교적 돈은 적게 들어서다. 리셀러가 대부분 대학생이나 취업준비생인 이유다. 초기엔 용돈벌이 정도로 여겼으나 고수익을 내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직업적으로 하는 이들도 늘었다. 리셀 상품은 마니아층이 두꺼운 운동화부터 시계·레고 등 장난감까지 다양하다. 연예인 팬사인회 대기 순서 등 무형의 ‘상품’이 리셀 대상이 되기도 한다.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됐던 허니버터칩 품귀 현상의 배경에도 리셀러들이 있었다.

 한 달 동안이나 닥치는 대로 편의점과 수퍼마켓을 모조리 뒤지고도 허니버터칩을 찾지 못했던 회사원 김모(30·여)씨는 결국 중고물품 카페에서 한 봉지를 6000원에 샀다. 택배비 4000원까지 포함하면 정가 1500원짜리 과자 한 봉지를 1만원에 맛본 셈이다. 김씨는 “심지어 아르바이트생에게 입고 날짜까지 물어본 뒤 찾아갔지만 판매대가 늘 비어 있었다”고 말했다.

 리셀러들에게 정보는 돈을 벌기 위한 필수 요소다. 언제, 어느 매장에 얼마나 많은 상품이 판매되는지 알아야 한다. 리셀러들은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이나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정보를 입수·공유한다. 업주들과 친분을 쌓아 인기 있는 상품을 선점하기도 한다.

 ‘대박 상품’을 보는 안목도 리셀러가 갖춰야 할 능력이다. 출시 상품이 인기를 끌 조짐을 보일 때 상품을 선점해야 리셀이 가능하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무렵에는 장난감 ‘티라노 킹’이 리셀러들의 표적이 됐다. 이들은 정가 7만5000원인 티라노 킹을 대형마트에서 사들인 후 개당 20만~30만원의 웃돈을 받고 판매했다.

 상품 제조·유통 업계는 ‘노이즈 마케팅(noise marketing)’ 효과가 있어 오히려 반긴다. 해태제과 관계자는 허니버터칩 품귀 및 리셀에 대해 “리셀러들도 한 명의 고객이라 제지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리셀러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주로 에어조던을 리셀하는 대학생 박모(25)씨는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라고 주장했다. 그는 에어조던 발매 전날부터 하룻밤 ‘캠핑’까지 하며 구매해 되판다. 한 번에 10만원이 넘는 이득을 본다. 최근에는 조던 4, 조던 11을 리셀해 약 30만원을 벌었다. 박씨는 “소규모 장사라고 보면 된다”며 “매장 측이 운영하는 블로그 등을 통해 발매 정보를 챙기고 구매를 위해 장시간 줄을 서는 등 시간과 노력을 쏟고 있다”고 밝혔다.

 일반 소비자 입장은 다르다. 리셀러들의 싹쓸이로 상품 구매 자체가 어려워지고 허위 수요가 늘면서 개인 간 거래가격도 치솟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리셀러들은 과일과 말총을 매점매석해 많은 돈을 챙긴 조선시대 소설 『허생전』 주인공 허생에 비유되기도 한다. 회사원 강민정(31·여)씨는 “상품을 사서 쓰거나 소장하려는 평범한 소비자만 피해를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