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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정재의 시시각각

오래된 원전은 왜 특별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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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정재
논설위원

오래된 차를 잘 고쳐서 쓴다고 다른 사람의 비난을 듣지는 않는다. 오래된 장난감, 오래된 TV, 오래된 식탁…. 다 문제없다. 그런데 안 되는 게 있다. ‘오래된 원전’이다. 30년 ‘설계수명’이 끝난 월성 1호기 얘기다.

 지난 15일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열렸다. 월성 1호기의 재가동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다. 갑론을박 끝 결론은 ‘다음달 재논의’였다. 장장 5년 만에 내린 결론치곤 허무할 지경이다. 정부가 결정을 미루기만 하는 동안 월성 1호기는 2년 넘게 멈춰서 있다. 정부는 “1만 년에 한 번 생기는 재난에도 안전하다”고 장담한다. 그러면 뭐하나. “그래도 부족하다”는 민간단체를 설득하지 못한다. 안전성·경제성 외에 사회적 수용성까지 고려하라는 환경단체에 끌려다니기 일쑤다. 진영논리까지 얽혀든 원전 문제가 가진 편향성 때문이다.

 월성 원전에 3년 전 가보기는 했으나 나는 원전에 대해 전문지식이 없다. 대부분 국민이 그럴 것이다. 그럴 때 쓰라고 전문가가 있다. 그런데 왜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였다는 원안위는 아무 결정을 못 내리나. 민·관을 수소문해 그 이유를 알려줄 전문가를 찾았다. 많은 사람이 김균섭 전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을 ‘중립적·객관적’ 인물로 꼽았다. 그에게 물었다.

 - 수명 연장이 왜 문제인가.

 “설계수명(Design life)이란 용어부터 잘못됐다. 수명은 생물에게 사용하는 용어다. ‘설계기간’이 맞다. 수명 연장도 ‘면허 갱신’으로 써야 한다. 미국은 ‘면허 갱신(license renewal)’, 캐나다는 운전면허 갱신(renew the operating license)으로 쓴다. 수명이란 용어를 쓰는 건 우리나라뿐이다. 여기서부터 오해가 생기는 거다. 그러니 안전성만 평가하면 되는데 안심성까지 평가하려 든다.”

 - 원전 비리가 국민 불안을 키웠기 때문 아닌가.

 “한수원 직원은 1만여 명. 다 사택을 준다. 사고에 대비해 원전 근처에 살게 한 거다. 대대로 직업 물림도 할 수 있다. 그러니 아들이 아버지 직원을 위해 데모하고, 아버지가 아들 직원을 위해 데모한다. 동네 아줌마가 노래방에서 술 먹다 원전 소장을 호출한다. 안 갈 수 없다. 술값도 내야 한다. 이런 술값이 부패·비리의 고리가 됐다. 이런 거 회사에서 비용처리 안 해준다. 해줄 방법도 없다. 어쩌나. 개인 주머니 터는 것도 한계가 있다. 납품업체에서 협조받는다. 처음엔 한두 번, 한두 푼, 반복되면 중독된다. 불감증에 걸린다. 40여 년 원전 비리·부패는 그렇게 쌓여왔다. 지난해 검찰·감사원이 2007~2012년분을 집중적으로 뒤졌지만, 그 앞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어마어마할 거다.”

 - 안전과 직결되는 부품 비리도 많았다.

 “1986년 미국 벡텔사가 감리·설계·시공에서 손 떼면서 이른바 한국형이 시작됐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었다. 그간 기술은 급속히 발전했는데 안전 규제는 40년 전 그대로다. 지난해 문제됐던 LS전선의 핵심 케이블, 그게 왜 필요한가. 지금은 무선으로 다 된다. 전 세계에 우리밖에 안 만든다. 이런 걸 외국 검증기관이 어떻게 심사하나. 낡은 안전규제 맞추느라 필요 없는 부품을 자체 제작, 자체 검사한 거다. 그런데도 핵심 부품이 위조됐다며 온 나라가 난리 치고, 부품 전수조사한다며 한여름 온 국민이 땀 뻘뻘 흘리며 지내야 했다. 기술표준부터 바꿔줘야 하는데 그러면 안전 후퇴라며 비난한다. 어쩌란 말이냐.”

 - 원전 문제는 전문가 영역이란 얘긴가.

“그렇다. 전문가의 영역을 국민 정서에 맡기는 건 망국 포퓰리즘이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 원안위가 안전이 아니라 안심을 이유로 원전 재가동 여부를 결정 안 하는 건 직무유기다. 원안위가 언제부터 원자력국민안심위원회가 됐나.”

 그는 “대신 국민이 안심하도록 원전 폐기 비용을 수십조원 현금으로 쌓아놔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정부가 돈 때문에 원전을 무리해서 돌린다고 생각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원전의 불안비용까지 감안한 정책’이라고 불렀다.

이정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