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3734)-제79화 육사졸업생들(187) 장창국|9기생 영관장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9기생중 다수는 70년대 초반 대령으로 예편했다. 그 이전 60년대에 중령·소령 등의 계급으로 예비역이된 사람도 상당수 있다.
이들 가운데는 장성진급자 못지않게 군에서 공로와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도 있고, 운이 없어 군에서 빛을 보지못한 분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보다 일찍 사회에 나와 일꾼으로 자리를 잡기도 했다.
고진영중령(69)은 4·19후 군복을 벗고 출판계에 투신, 성공했다.
5·16에 민간인으로 참여해 자금조달에 한몫 하기도 한 고중령은 동아서적이란 외서전문서점과 출판사를 경영, 9기생중 갑부로 꼽힌다.
근자에는 미국에 간 자녀들을 보기위해 미국 나들이가 잦아 미국 이민설이 나돌기도 했으나 헛소문에 불과하다고 한다.
김경윤소령(56)도 사업으로 성공한 9기생. 6·25때 포로가 됐다가 휴전회담에서 포로교환으로 귀환한 김소령은 군에 복귀했다가 소령으로 예편한뒤 양조업에 손을 댔다. 경기도용인에 양조장을 가지고 재미를 톡톡히 봤다고 한다. 양조협회 감사를 맡기도했고 현재도 재력있는 9기생으로 동기들 사이에 알려져 있다.
허동화중령(56)은 사이다 등 청량음료 제조에 쓰는 탄산가스 제조공장을 차려 돈을 번 뒤 우리 전통 민속공예인 매듭수집에 취미를 붙여 손꼽히는 수집가가 됐다.
6·25때 한쪽다리를 잃는 전상을 입고 중령으로 예편한 박병호씨(55)는 상이군인으로서 자립한 성공사례로 꼽힌다. 박중령은 일찌기 경기도이천에 황무지를 일궈 현재는 7만5천여평의 큰 과수원 주인이 됐다. 땅값만 수십억대를 홋가한다고 한다.
주기나중령(56)은 예편후 어린이대공원 안의 놀이동산 경영을 맡아 꽤 재미를 봤다고 한다.
민간기업으로 가 활약하는 영관 장교로는 강대하·김원기·이현섭대령 등이 있다.
강대령은 63년 예편후 개인사업을 하다가 별 재미를 못보고 72년 대한광학 이사로 들어갔다. 전무를 거쳐 지난해 사장으로 선임됐다.
병참출신의 이현섭대령(57)은 예편후 한양대학교 재단에서 경영하던 대한해운공사에 들어가 동경지점장으로 6년여를 일했다.
그후 해운공사가 다른 기업에 넘어가자 백남관광을 맡아 현재는 사장으로 있다.
김원기대령(58)은 기아산업 계열회사인 창원공예주식회사 사장으로 재직중이다. 박홍성중령(56)도 현대자동차에서 부장으로 일하다 퇴직했다.
엄경호중령(56)은 대한방직 부사장으로 재직중이며 조돈철중령(60)은 대한통운의 이사대우 부장이다.
김경산·김학보·정인화중령은 예편후 공무원이 됐던 사람들이다.
정인화중령(57)은 4·19직후 예편해 관세청에 들어가 10여년 공무원 생활을 했다.
서울세관 총무과장 등을 거쳐 몇해전 퇴직한뒤 현재 구로공단 입구에 신일관세사무소를 차려 관세사로 활약하고 있다.
김경산중령(56)은 전매청에 과장으로 들어갔다가 10여년전 퇴직, 개인사업을 하고 있으며 김학보중령(56)도 조달청에 과장으로 근무했었다.
공병의 김석진중령(56)도 퇴역후 공무원이 돼 대전시의 구청장 등을 지내고나와 대유건설이란 토건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포병의 심호은중령(56)은 예편후 「의정문화사」란 출판사를 자영하며 「의정문화연구소」를 병설, 출판과 저술 활동에 종사하고 있다.
강승호대령(58)은 6·25개전 초기 6사단 2연대의 소대장으로 유명한 신남전투에서 용맹을 떨쳤던 사람이다. 당시 20명의 육탄공격조를 편성, 적탱크2대를 부수고 8대를 퇴각시킨 무공을 세웠었다.
개전초 전전선에서 국군이 밀리던 무렵 춘천·홍천방면 6사단의 분전은 적의 기세를 꺾어 국군의 사기를 높이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강씨는 대령으로 예편해 동방강건주식회사 부사장으로 있다.
6·25때 평남 용궁전투에서 활약한 조용세대령(58)은 수도비디오사장으로 자기사업을 착실히 하고 있다.
계병삼대령(53)은 63년육군모연대 부연대장으로 있으면서 서부전선에 침투한 2명의 무장간첩을 직접 생포해 화제가 됐었다. 계대령은 정찰을 나갔다가 한탄강을 건너는 2명의 무장간첩을 발견하고 1개소대를 동원, 추적끝에 강변에서 휴식중인 무장간첩을 생포했다고 한다. 9기생들은 그밖에도 김윤기(56) 이일평(57) 박재근(55) 이승익(58) 송병준(56) 대령 등을 아까운 영관 퇴역자로 꼽는다.
김형묵대령(57)은 캐나다에 이민, 부동산투기로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고 들었다. <계속>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