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기업가 정신을 죽이는 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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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이우갑
㈜친구 대표이사

드라마 ‘미생’에서 최 전무(이경영 분)는 자신의 영달과 회사의 발전을 위해, 오 차장(이성민 분)은 계약직인 장그래(임시완 분)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 중국 기업과의 계약을 추진했다. 하지만 ‘꽌시’(인맥을 뜻하는 중국어)라는 편법을 쓴 탓에 최 전무는 좌천되고, 오 차장은 사표를 쓰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를 한국 기업의 현실에 맞게 CEO가 계약을 추진한 것으로 재구성해보자. 계약이 무산됐다면 CEO는 ‘업무상 배임죄’로 처벌 받을 수 있다. 계약이 성사되도 결과는 비슷하다. 모두가 기뻐하는 ‘해피엔딩’을 누릴 겨를도 잠시. ‘단기적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이유로 시민단체가 CEO를 고발할 것이다. 여기에 ‘꽌시’를 위해 사용한 비자금으로 ‘횡령’, ‘외환관리법’ 위반 등까지 추가로 처벌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일이 한국에선 기업인들에게만 일어난다는 거다. 대법원에 따르면 2011년 한 해에만 횡령·배임 혐의로 1심 형사재판을 받은 사건이 총 5716건에 이른다. 이 중 1496건(26.2%)만 실형이 선고됐다. 나머지 4000여 명의 억울함과 기회비용은 누가 보상하는가?

 사업은 ‘호랑이 등에 올라 탄 것’이란 말이 있다. 어려운 상황에도 쉽게 사업을 포기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만큼 기업 CEO는 어려운 경영 판단을 내리며 엄청난 리스크를 안고 사업을 운영한다.

 업무상 배임죄가 있는 독일과 일본은 ‘경영상 판단’의 경우에는 형사처벌을 배제하고 있다. 미국은 ‘업무상 배임’을 민사상 손해배상으로 다루고 있다. 유독 한국에서만 기업 CEO가 경영상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강력하게 형사처벌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기업의 불법·편법행위를 옹호하려는 게 아니다. 경제 통념상 용납할 수없는 탈법행위는 처벌받아야 마땅하다. 다만 폭넓은 경영활동을 엄격한 법의 잣대로 재단할 경우 자칫 경영이 위축되는 부작용을 빚을 수 있다. 기업의 수출과 생산활동으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에 마이너스다.

이우갑 ㈜친구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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