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포럼] 노동자 울리는 노동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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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정치인이라면 누구든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뭔가 보답하려 들게 마련이다. 특히 그들이 한동안 푸대접 받아온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될 때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최고통치자인 대통령이라면 일반 정치인과는 달리 행동해야 한다. 지지자를 후대하고 반대자는 핍박한다면 국가는 분열되고 결국은 국정의 파탄을 부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좋은 기회를 놓쳤다. 1960년대 이래 40년 가까이 영남 출신 대통령들이 통치한 후에 집권한 그는 잘만 했으면 지역주의를 타파하고 동서화합이라는 민족적 대과업을 이룰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본인의 영예로운 퇴진은 물론이고 그 다음에도 바로 호남 대통령이 대를 이어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희망이 물거품이 되고 만 것은 그간의 '호남 푸대접'을 단기에 역전시키려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능력보다는 출신지역을 중시한 편파적인 인사로 요직이 점거되었고 이것이 부정부패로 연결되면서 국민의 실망과 반발을 불러왔던 것이다. 지금은 여권 내에서부터 호남 푸대접론이 되살아나는 등 지역감정의 골이 다시 깊어지고 있다.

만약 그가 자신을 믿는 측근과 지지세력에게 국가장래를 위해 욕심을 버리도록 설득하고, 공정한 인사와 국민의 화합에 역점을 두어 국정을 운영했었다면 결과는 사뭇 달랐을 것이다.

이런 아쉬운 점이 노무현 정부에서는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많은 국민의 바람이다. 걱정되는 분야가 노사관계다.

盧대통령은 일찍부터 친노(親勞)적 성향 때문에 노조의 지지를 얻었고, 취임 후 정부의 노동정책 또한 두산중공업의 사례에서 보듯 노조에 유화적인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가 사회적 약자라는 주장을 바탕으로 이들을 두둔하는 데에만 정책이 편향된다면 김대중 정부의 전철을 밟을 우려가 있는 것이다.

새 정부 노동정책의 많은 부분은 당장 기업에는 부담으로 돌아오게 된다. 문제는 기업들이 현 경제상황하에서 이를 제대로 감당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지금도 수많은 국내기업이 분식회계를 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실제는 손실인데도 이익이 난 것처럼 장부를 꾸며 출혈을 감추고 있는 기업들이 많다는 얘기다. 이런 기업들에 더 많은 짐을 지게 한다면 부실이 심화되고 결국은 도산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경제에 더 큰 걸림돌은 불법적이고 파괴적인 파업이다. 정부가 원칙없이 대응한다면 기업의 생산.투자활동은 더욱 위축되고 실업자가 양산됨으로써 경제위기가 재연될 위험이 있다. 우선은 노동자를 위하는 것처럼 보이는 정책들이 결국은 그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발표된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소(IMD)의 국가경쟁력 비교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외국인 투자유치에서 30개 경제권 중 30위의 바닥이라고 한다.

노사관계 또한 꼴찌로 평가되고 있다. 노동정책이 이런 상황을 개선하지 못하고 오히려 악화시킨다면 '동북아 경제중심'이라는 정부의 꿈은 도저히 실현될 수 없을 것이다.

국가 장래를 생각한다면 정부는 노동자나 사용자의 어느 한쪽을 편애하기보다 공정하고 균형잡힌 자세를 견지함으로써 산업평화를 유도해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데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것이다.

기대가 컸던 노조 쪽이 반발할 수도 있지만 이들의 지지와 신뢰를 얻고 있는 盧대통령이 나서서 현 상황의 어려움과, 노동자의 단기적 이익보다 장기적 후생을 고려한 정책이라는 점을 설명해 이해와 협조를 얻어내도록 해야 할 것이다.

노성태 <경제연구소장 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