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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산까지 …" 뭘 믿고 먹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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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국립수산물품질검사원 연구원들이 6일 국산 양식 송어와 향어의 시료를 가지고 발암물질 유무를 검사하고 있다. 고양=김춘식 기자

국내 양식장에서 발암 의심 물질인 말라카이트 그린이 검출됐다는 정부의 발표가 나오자 "국내산 민물고기는 안심할 수 있다"는 정부의 발표를 믿었던 시민들은 배신감까지 느끼고 있다. 또 민물 매운탕이나 횟집.양식장 등은 앞으로 큰 타격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송어나 향어 등의 민물고기뿐 아니라 바닷물고기 소비량도 줄어들 가능성이 있어 대형 유통업체나 일반 횟집 등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

이번 사태에 대한 정부의 책임론도 제기되고 있다. 해양수산부가 올 5월 펴낸 수산기술지에는 꽃게가 각질병에 걸리면 발암물질인 말라카이트 그린을 사용하라고 적혀 있다. 더구나 교육부가 발행하는 고교 교과서 '수산양식'과 '양식생물 질병'에도 2002년까지 물곰팡이 구제에 0.1~0.2ppm 농도로 말라카이트 그린을 살포하라는 내용이 실려 있다. 일부 양식업자는 이런 자료를 참고해 사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 주문 취소 잇따라=연간 매출이 5억원에 달하는 강원도 평창군 B송어양식장에는 6일부터 주문 취소 전화가 쇄도했다. 이 양식장 사장은 "우리 양식장은 말라카이트 그린이 검출되지 않았는데도 오늘(6일)에만 이미 10여 곳의 횟집이 주문을 취소하겠다고 연락해 왔다"고 울상을 지었다. 그는 "그동안 양식한 송어를 10월~내년 2월에 집중적으로 파는데 이런 일이 생겨 매출이 큰 타격을 받게 됐다"면서 "정부가 말라카이트 그린 검출량 등에 대한 자세한 기준도 없이 너무 성급하게 발표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송어 전문식당도 잔뜩 긴장하고 있다. 경기도 시흥시에서 송어전문식당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장어 파동 때 좀 타격을 받으면서 어렵게 고비를 넘겼는데… 손님들이 잘 몰라서인지 아직 피부로 느껴지지는 않는다"고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강원도 인제군의 한 송어횟집 사장은 "그렇지 않아도 요즘 장사가 잘 안 되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 불안한 시민=서울 강남에 사는 강모(52)씨는 "장어 파동 때 정부가 국산 민물고기는 안전하다고 발표했는데 이게 뭐냐"며 "이래서야 어디 생선을 먹을 수 있겠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업무 때문에 강원도 지점을 자주 방문하는 금융회사 임원 박모(45)씨는 "업무상 출장을 가면 주로 송어회로 회식을 하는데 내가 먹은 회도 말라카이트 그린이 들어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불안하다"고 말했다.

◆ 수산물 파동 우려=해양수산부는 6일 브리핑에서 "민물 양식장에서는 물곰팡이를 방지하기 위해 말라카이트 그린을 쓰는 데가 있지만 바닷물에는 물곰팡이가 없기 때문에 말라카이트 그린이 검출되지 않은 것 같다"고 밝혔다. 하지만 해양부가 그동안 세 차례의 민물고기 표본조사에서 말라카이트 그린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했다가 이번 전수조사에서 검출됐기 때문에 이에 대한 불신이 강한 편이다. 일반 횟집들이 우려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서울 서대문 C 횟집 관계자는 "송어와 바닷물고기는 다르다고 손님들에게 설명하지만 선입견 때문에 손님이 오지 않는다"면서 "매출이 20% 이상 줄어들 것"이라고 걱정했다.

서울 그랜드백화점 관계자는 "중국산 장어 파동으로 8월 말부터 3일까지 수산물 전체 매출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2% 감소했다"며 "앞으로 수산물은 식의약청이나 수산물품질검사원 검사를 통과한 제품만 판매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책사회부.사건사회부

곰팡이 죽이는 약 … 조리해도 안 없어져

◆ 말라카이트 그린=일반적으로 섬유.목재.종이.잡화 등의 염색약품 또는 체외진단용 시약 등으로 사용되지만 연어.송어.메기 등 수산양식에서는 물고기 병을 일으키는 곰팡이를 죽이는 용도로 사용된다. 음식을 조리하더라도 날아가지 않는다. 말라카이트 그린은 암을 일으키는 물질로 의심되고 있으며, 미국.일본.중국 유럽 각국에서는 사용 금지 물질로 분류돼 있다.

우리에게는 말라카이트 그린 허용 기준이 없다. 말라카이트 그린은 사용이 금지된 성분이지만 허용 기준이란 식품에 들어 있을 수 있는 최소한의 양을 의미한다. 유럽연합(EU) 등의 선진국들은 0.002ppm 정도로 허용 기준치를 설정해 놓고 있다.

양식장 표본조사 연 1회도 안돼
민물고기 관리 허술

'허술한 검역체계, 따로 노는 행정당국…'. 납꽃게 등 종전의 식품 파동 때와 마찬가지로 말라카이트 그린 송어 파동에서도 이 같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국내 양식장에서 생산되는 민물고기는 양식장에 있을 때 일부가 표본 검사를 받지만 유통 과정에서는 전혀 검역을 받지 않는다. 중국 등지에서 들어오는 민물고기는 통관을 하면서 서류심사나 육안검사 등 네 가지 검사 중의 하나를 반드시 받도록 돼 있다.

양식장에 대한 표본 검사도 수은.납 등의 중금속, 항생제, 장염비브리오균 등을 검사하는 게 전부이다. 그나마 전국 2923개 양식장의 검사 횟수는 1년에 한 번이 채 안 된다. 검사를 담당하고 있는 국립수산물품질검사원 인력이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양식업자가 도소매 시장으로 출하하기 전이나, 시장에서 가정.식당 등으로 가는 동안 평소에는 품질 검사를 하지 않는다. 이번처럼 유해 물질이 있다는 정보가 있을 때는 검사를 하지만 그것도 소수의 표본을 뽑아 검사할 뿐이다.

감독관청이 두 곳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도 검역 체계를 혼란스럽게 하는 요인이다.

수산물은 해양수산부가, 수산물가공품은 식품의약품안전청이 관리한다. 수입품도 마찬가지다. 산 장어는 해수부가, 양념 장어는 식의약청이 맡는다.

국내 양식 민물고기는 더 세분화돼 있다. 양식장 인허가와 관리는 해양수산부가, 양식장을 나서는 순간부터는 식품의약품안전청이 관리한다.

적용되는 법도 다르다. 양식장은 수산업법, 양식장 유해물질 관리는 수산물품질관리법인데 여기까지는 해양부가 담당한다. 유통단계는 식품위생법이 적용되며 보건복지부가 담당한다.

정책사회부.경제부
사진=김춘식 기자 <cyjb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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