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청탁 기준 제각각인 원님재판” “2촌까지 대상이면 3촌에게 주겠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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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호 15면

“엄두가 안 나잖아요. 법안이 넘어올 때 최소한의 완결성을 갖췄어야 하는 게 아닙니까. 이게 뭡니까.”

국회 정무위 회의록 뜯어보니

 지난해 5월 23일 국회 정무위원회 1차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김용태(새누리당) 소위원장은 탄식을 뱉었다. 이날 회의는 4월 상임위 회의에 이어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법안’(일명 김영란법)을 심사하는 자리였다. 김 소위원장은 정부안을 마련한 국민권익위원회 이성보 위원장을 출석시킨 자리에서 법안의 완결성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이날 국회 정무위 회의록에는 ‘김영란법’이 갖고 있는 논리적 허술함에 대한 지적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의원들과 국민권익위 관계자들 사이에 오간 대화는 블랙코미디를 연상케 할 정도다.

 ▶강석훈(새누리당) 의원=타인의 행위에 의해 자기가 처벌되는 경우가 다른 법에도 많이 있나요?

 ▶이성보 국민권익위원장=별로 없습니다. 금품수수 행위가 가족을 통해 많이 이뤄지고 있어 다른 법과 구별되게 책임의 범위를 넓혀 놓은 것이죠.

 ▶강석훈=가족을 2촌까지 넓혀 놓으면 3촌에게 주겠지요. 그게 무슨 실효성이 있을까요.

 (정무위는 지난 8일 이 법안을 의결하면서 배우자와 부모·자식·형제자매, 생계를 같이하는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형제자매 등을 민법상 ‘가족’으로 범위를 정했다.)

 범죄에 따른 형벌을 명확히 법률로 규정해야 한다는 ‘죄형법정주의’ 논란도 나왔다. 정부안은 ‘부정청탁’에 대해 ‘공정하고 청렴한 직무 수행을 저해하도록 하는 행위’라고만 규정했다. 사례마다 부정청탁의 기준이 달라진다면 ‘원님재판’과 다를 게 뭐냐는 주장도 나왔다.

 ▶김기식(새정치민주연합) 의원=형사처벌은 법이 명료해야 되잖아요. 자기 행위의 예측 가능성이 있어야 될 것 아니에요. 공정성을 해칠 우려가 없다고 국민은 믿어요. 그런데 판사나 검사는 공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하면…. 이 법 어디에 기준이 있나요.”

 ▶이성보=맞습니다. 지금 지적하신 것 다 옳고요.

 ▶김기식=다 옳다고 그러면서 법안을 어떻게 이렇게 냅니까.

 ▶이성보=…그래서 이 법을 종래의 형사이론을 가지고 계속 들여다보면 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정무위는 격론 끝에 원안에 있던 포괄적 부정청탁 개념을 삭제하고 인허가, 면허처리 위반, 일감·용역 몰아주기 등 15가지 행위 유형을 명문화했다. 하지만 이 유형만으로 개별 사례를 모두 포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의결법안에서 제외된 ‘공직자 이해충돌법안’을 놓고선 더 희극적인 상황이 빚어졌다.

 ▶김기식=예를 들면 방송사 보도국장은 사촌 이내 친족이 공무, 직업을 가지면 안 되는 거지요.

 ▶박대동(새누리당) 의원=직업을 가지면 안 되지. 다 걸리지.

 ▶강석훈=국무총리 친척은 전부 직장을 갖지 말아야지요. 국무총리는 업무 연관성이 없는 데가 없을 테니까.

 ▶김용태 소위원장=내가 건설회사 영업부서에 있고 사촌 형이 도로교통국장이면 사촌 형이 국장에서 벗어나든지 내가 이 회사에서 벗어나야 되는 거예요?

 ▶김기식=영업부에서 경리부로 가야지….

 ▶김기식=신문사 편집국장인데 형님이 장관이 됐어요. 그러면 그만둬야겠지요. ‘알겠습니다’ 하고 사임하겠습니까, 위헌소송을 내겠습니까. 판사 출신으로 어떻게 보세요.

 ▶이성보=어필을 할 것 같습니다.

이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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