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고기와 혈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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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돼지고기는 공연히 천대를 받고 있는 것 같다. 예로부터 부정한 동물로 여겨져 몸에 병이 있을 때는 금기식품으로 꼽기도 했다.
82년 통계로 1인당 돼지고기 소비량을 보면 현실은 이런 속설과는 딴판이다. 6㎏ 남짓, 쇠고기 소비량 2.7㎏의 3배에 육박한다.
이렇게 많이 먹으면서도 쇠고기만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쇠고기의 소비량이 상대으로 딴 나라에 비해 높기 때문이다. 일본 사람은 쇠고기 5 .5㎏을 먹을 때 돼지고기는 13.9㎏, 자유중국은 1.21㎏ 대 34.7㎏이다. 이런 비율로 보면 돈공을 하대함은 오로지 우리의 선입견 때문이다. 『일개회회탱사 양개회회아사』란 말이 있다. 중국의 식품고전을 연구하는 일본 경도대학 「구와바라」교수가 찾아낸 말이다.
뜻은, 돼지고기를 앞에 놓은 1명의 회교도가 남이 보지 않는 틈을 타 너무 많이 먹고 죽었으며, 두 사람의 회교도는 서로 체면을 지키느라고 먹지 않아 굶어 죽었다는 말이다. 회교라면 돼지고기는 절대 금지식품. 엄격한 계율을 깰 만큼 아마 돼지고기는 매력이 있었나보다.
영양가를 비교해도 돼지고기는 쇠고기와 맞먹는다. 1백g당 돼지고기의 열량과 지방은 쇠고기를 앞선다. 단백질과 비타민A가 쇠고기보다 약간 떨어질 뿐이다.
그러나 돼지고기에는 티아민(thiamin)이 많다. 0.95㎎이 있는데 비해 쇠고기는 0.12g에 불과.
식품영양학자 「R·존슨」박사는 근육운동 때 티아민과 비타민C의 부족은 조속한 피로를 초래한다고 말한다. 몸을 많이 움직이는 사람이나 성장기 청소년에게 돼지고기가 좋음을 알 수 있다.
인류가 문명을 이루면서부터 돼지는 가축으로 길러 왔다. 중국에서도 은 주 춘추시대에는 소를 으뜸으로 쳤고 한대에는 양, 그 이후에는 돼지고기를 쳐주었다.
집「가」자도 따지고 보면 「움집 면」자 밑에 「돼지 시」자가 매달려 있다. 집이라면 당연히 돼지를 길렀다는 뜻이다.
우리도 삼국시대 이전부터 돼지를 길러 고기를 먹고 가죽은 입으며 기름은 몸에 발라 추위를 막는다고 했다. 『위지』동이전에 나오는 말이다.
우리가 돼지고기에서 가장 꺼리는 것이 바로 비계. 그러나 최근의 가공식품이나 조리법은 비계를 쉽게 빼낸다. 게다가 요즘엔 돼지고기가 고혈압 같은 성인병을 유발한다는 속설도 근거가 없다는 연구결과들이 발표되고 있다.
최근 중풍환자 가운데 오히려 쇠고기를 즐겨 먹었다는 사람이 1백10명 중 53%, 돼지고기를 즐겨 먹은 사람은 12%에 불과했다는 어느 유명 한의사의 임상보고도 있다. 콜레스테롤도 쇠고기가 94㎎(1백g당) 인데 비해 돼지고기는 89㎎으로 오히려 적다.
쇠고기만 고집하는 우리 식성도 이젠 좀 바뀔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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