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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저출산을 위한 변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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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논설위원

자식을 많이 낳는 것이 애국인 시대다. 일하는 엄마라 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었는데 “좋은 유전자를 많이 퍼트리는 소임을 다하지 못했군”이란 말까지 들었을 땐 기가 막혔다. 하자투성이인 나를 ‘좋은 유전자’로 치켜세우는 ‘선의’로 참고 넘어가기로 했다.

 최근 한국생산성본부의 ‘저출산 극복’ 포스터가 논란이 됐다. ‘하나는 부족합니다’라는 문구 아래 한쪽엔 누렇게 마른 외떡잎을, 반대편엔 싱싱한 쌍떡잎을 대비시켰다. ‘외둥이에게는 형제가 없기 때문에 사회성이나 인간적 발달이 느리고 가정에서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이루어 보았으므로 자기중심적이 되기 싶습니다’라고도 써넣었다. 사회보호망의 부재 속에 외둥이를 낳을 수밖에 없는 현실, 외둥이 간 개인 차를 무시하고 ‘외둥이=문제아’로 낙인찍은 셈이다.

 물론 인구란 것이 경제력·국방력·창의력의 원천이라는 점에서 저출산은 심각한 사회문제다. 일본을 쫓아 저출산→경제인구 부족→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크다. 그러나 한 개인의 몸 결정권의 하나인 출산을, 언제든지 통제 가능한 국가 시책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 또한 문제다. 저출산을, 육아 부담을 기피하는 이기심의 발로로만 규정하는 출산장려 캠페인들이 그렇게 나온다. 논란을 낳았던 ‘저출산세(稅)’ 문제나 이번 ‘외둥이 비하’ 포스터가 그렇다.

 미국 저널리스트 앨런 와이즈먼은 『인구쇼크』에서 “4.5일마다 100만 명씩 늘어나는 인구를 자연적인 한계에 맞게 조정하지 않으면 곧 자연이 우리를 대신해 인구를 조정할 것”이라고 썼다. 개별 국가에서는 인구 감소에 따른 경제적 문제가 야기되지만 자원고갈, 환경파괴, 지구온난화 등 인류가 직면한 수많은 문제의 원천 또한 너무 많은 인구라는 것이다. 그는 또 “다국적기업들에 인구가 많아진다는 것은 같은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값싼 노동력이 늘어나고 시장이 커진다는 의미”라며 “인구가 감소해 국가의 GDP가 감소해도 국민 1인당 소득, 즉 당신의 소득은 줄지 않는다. 일할 사람이 줄어들수록 노동력은 더 귀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장 한국의 미래도 중요하지만 한 번쯤은 지구의 미래도 생각해보자는 얘기다. 지구 없이는 한국도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지금 젊은 세대의 저출산이, 혹 출산파업이라는 방식의 사회적 저항은 아닌지도 따져볼 일이다. 나도 한때는 지옥 같은 세상에 아이를 내놓는 일이 무책임하게 느껴져 세상을 부정하듯 무(無)자식주의자였던 시절이 있었기에 하는 얘기다.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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