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알뜰살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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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선선한 빛발에 보송보송 잘도 마른 세탁물을 한아름 걷어다가 개킬때마다 유독 눈에 띄는 것은 두 무릎이 해진겨울 내의다.
결혼한지 두 해가 훨씬 지나고 보니 그때 새로 준비했던 옷가지가 더러는 낡고 이렇게 해진 것도 생기게 된다.
화학섬유가 대부분인 세상이라 걸레감이 마땅치 않은 것은 어느 가정에서다 마찬가지리라 생각된다.
그래서 어느 집의 경우나 아예 큼지막한 새 타월로 걸레를 만들어 쓰는 걸 번번이 보게 된다.
새 타월로 걸레를 만들어 쓰는데 익숙지 못한 나는 시골 친정이나 시댁에 다녀오는 길엔 걸레감으로 안성맞춤인 무명 적상이나 삼베 보자기 같은 것을 챙겨 오곤 했었다.
적잖이 딸을 여섯이나 둔 진정 어머니께선 한번도 새 내의를 입을 수가 없으셨다.
어쩌다가 새 내의라도 생기게 되면 딸들 중 누구에게라도 넘겨주시고, 당신은 새 내의 대신 무릎에 손바닥만한 천을 대 다시 꿰멘 다 낡고 낡은 것 차지였다.
시골이라 소나 개등 가축이 있으니 남은 음식처리야 얼마든지 홀가분할 수 있음에도 어머니는 밥 한 톨, 떡 한 조각 획획 버린 적이 내 기억엔 결코 없다.
철이 없어 남은 음식을 함부로 다루던 내게 늘 꾸지람으로 대하시던 기억은 많고도 많은데, 그때 그 지긋지긋한 잔소리로만 여겼던 꾸지람이 지금엔 얼마나 절실한 생활의 지혜인가.
어쩌다 버리게 되는 밥한 술, 국 한 모금에도 하늘에 죄 된다 시던 어머니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못 먹게 된 찬밥은 누룩이나 엿기름에 삭혀 감칠맛 나는 단술을 만드셨고, 떡 조각은 잘 말렸다가 튀겨 아이들 군것질하라고 주셨다.
철없던 내겐 궁상스럽게만 보였던 어머니의 살림살이 솜씨 덕을 이제야 톡톡히 볼 수 있으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으랴.
어떤 것보다도 귀한 가르침을 주신 친정어머니께 뒤늦은 감사를 드리고 싶다. 양종숙 <경기도 부천시 소사동 166의11 2통6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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