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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통제권 환수하면 자주군대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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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어떤 나라가 자국 군대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지니지 못하면 그 군대는 자주군대가 아닌가? 그렇지는 않다. 북대서양조약기구, 즉 '나토'에 속한 나라들도 미군 장성이 동맹군 총사령관을 맡고 있다. 이들 나라의 군대는 평시에는 자국의 작전지휘체계에 속한다. 하지만 전시나 그에 준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사전 합의된 절차에 따라 미군 장성이 총사령관을 맡고 있는 나토군사령부(유럽동맹군사령부와 대서양동맹군사령부)의 작전 통제를 받도록 돼 있다. 규모로 볼 때 나토군 전체에서 미군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다지 크지 않지만 동맹국들은 지휘체계 면에서 미군의 주도적 역할을 인정하고 있다. 2003년 이후 나토는 지휘 구조를 변화시켜 기존의 편제를 동맹작전사령부와 동맹변혁사령부, 그리고 나토기동군으로 바꾸었다. 하지만 미군의 주도적 역할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이들 국가가 자주의식이 모자라서 미국의 전시 작전통제권을 수용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것은 장기적 국익과 군사적 효율성을 따진 전략적 선택의 결과일 것이다. 이 점을 알기에 나토 회원국들에 전시 작전통제권을 보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주국가가 아니라고 비난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같은 이유로 한국의 자주성을 의심하는 나라도 북한을 빼면 찾아보기 어렵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대통령이 굳이 '자주'군대의 요체로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를 계속해 언급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전시 작전통제권이 환수되면 현재와 같은 한미연합사령부는 불필요하거나 존속되기 어렵게 될 것이다. 그 경우 한국군과 주한미군 사이의 지휘체계로 일본식의 병립형 구조를 대안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주일미군과 자위대는 평시나 전시에 모두 자국 군대에 대한 지휘권을 독자적으로 보유하고 있다. 대신 군사적으로 공동 작전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 양국 간에 '공동계획검토위원회'나 '공동조정소' 같은 연락 및 조정기구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미.일 양국의 지휘구조가 병립형이 된 것은 일본의 특수성 때문이다. 주지하듯이 일본은 평화헌법에 따라 공수(攻守)를 겸하는 군대가 아니라 방어만을 목적으로 하는 자위대를 보유하게 되었다. 이런 자위대가 정식 군대인 주일미군과 통합된 지휘체계 속에서 활동할 수는 없었기에 마련된 것이 각자가 독자적 지휘체계를 갖는 병립형 구조였다. 그렇기 때문에 유사시에 작전을 할 때에도 미군이 주도하고 자위대는 지원 역할을 하도록 돼 있다.

한국과 미국은 미.일과 다른 조건에 처해 있다. 따라서 한.미 양국이 일본식의 병립형 구조를 참조할 수는 있겠지만 그대로 답습해야 할 이유는 없다. 한국은 고려해야 할 변수가 일본보다 많다. 우선 북한 변수가 있다. 설사 평화협정을 통해 북.미 및 남북 간에 긴장관계가 해소되더라도 통일까지는 먼 여정이 남아 있다. 따라서 그 경우에도 우리는 전혀 다른 시스템을 지닌 주권국가로서의 북한을 여전히 주요 변수로 고려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잃지 않으려는 주변 강국들, 특히 중국이 북한의 후원자로 나서는 일도 충분히 예견 가능하다.

'자주'군대도 좋고 자주국방도 좋다. 그러나 그 자주도 현재는 물론이고 평화체제 수립과 통일에 이르는 과정, 그리고 통일 이후까지의 우리의 생존을 생각하는 가운데 모색돼야 한다. 냉전 종결 이후 소련의 위협이 사라졌음에도 어째서 나토 회원국들은 미국의 역할을 강화하는 데 동의하고 있는 것일까? 곱씹어 볼 일이다. 미.일 동맹이 지속 강화되는 가운데 일본이 평화헌법을 개정해 군대를 보유한 뒤에도 양국 간에 현재와 같은 병립형 지휘구조가 지속될까? '예'라고 자신 있게 답할 자신이 없다.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