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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살찌니, 바람도 맛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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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동해 바다는 매섭다. 그러나 풍요롭다. 차디찬 해류를 따라온 물고기들이 앞바다에 그득하다. 강원도 강릉 주문진 해변에서 한 아낙이 도루묵을 말리고 있다. 며칠 해풍에 말리면 그 맛이 구수해진다.

겨울 바다는 여름이 그립지 않다. 탱탱하게 영근 생명을 품고 있어서다. 강원도 속초 동명항에서 만난 어민 김용식(54)씨의 말마따나 본디 갯것은 겨울이 제철이다. “겨울 바다가 매서워도 맛은 진합니다. 고기들이 차디찬 계절을 견디려 몸을 단련하는 까닭이지요.”

하여 바다는, 겨울에 맛있다. 더 정확히 집자면 동해안 중북부 해안가는 시방 바닷바람조차 맛있다. week&이 강원도 속초의 동명항과 속초항, 강릉의 주문진항과 사천항으로 겨울 포구여행을 떠난 이유다.

바다가 살찌니 포구는 신바람이 일었다. 어민과 중매인, 난전 상인과 여행객, 거기에 갈매기까지 뒤섞였다. 그 열기가 한겨울 추위를 녹이고도 남았다.

어항이 바쁘다는 것은 바다가 풍성하다는 의미다. 동해 겨울 맛 잔치의 서막을 열어젖히는 주인공은 응당 도루묵과 양미리다. 알 밴 도루묵과 속이 꽉 찬 수컷 양미리는 어민들 사이에서도 술을 부르는 맛으로 통한다.

다행히 속을 풀어주는 맛도 있다. 풍선 같은 몸에 빨판이 달려 있는 도치, 사람 팔뚝만큼 길쭉한 장치가 주인공이다. 뭍에서는 최근에서야 진가를 알아봤지만 뱃사람들이야 진즉에 즐겼던 맛이다.

그러나 동해안 어부에게 효자 노릇을 하는 것은 따로 있다. 바로 문어다. 겨울에는 문어가 1㎏에 4만원을 훌쩍 넘어서기 일쑤다. 겨울 문어가 몸값만 비싼 것도 아니다. 강릉의 횟집 ‘해랑’의 홍인표(44) 주방장은 “동해 중북부에서 잡히는 겨울 피문어는 남해안 돌문어보다 더 달콤하고 쫀득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해 별미를 찾으러 나선 길에 속초 아바이마을을 지나치기는 어려웠다. 실향민이 모여사는 아바이마을에는 아바이순대·오징어순대 등 이름난 이북 음식이 많지만 이 중에서도 이북식 젓갈인 가자미식해는 꼭 겨울에 맛 봐야 한다. 1~3월에 잡히는 가자미는 육질이 단단해서 이때 만든 젓갈이 가장 맛있다.

그 누가 겨울 바다를 을씨년스럽다 했던가. 물고기를 말리고, 데치고, 찌고, 끓이고, 굽는 소리로 동해 바다는 시끌벅적했다. 갯마을 사람들은 그들의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전수받은 조리법 그대로 겨울 바다를 한 그릇에 뚝딱 담아냈다. 그 맛이 따뜻했다.

 
글=양보라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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