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주의 소곤소곤 연예가] 영어·일어 술 ~ 술 최헌, 학구열 좀 말려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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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TV '스타 골든벨'을 만들면서 가장 기대되는 부분이 있다. 그동안 어디에서도 확인하지 못한 연예인의 영어 실력이다. 정해진 방송시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많이 편집되지만, 녹화장에서는 매주 입이 떡 벌어지도록 의외로 영어를 잘하는 스타들이 한둘은 꼭 있다. 동포 출신이나 해외 유학파 연예인은 그렇다 치고 전혀 예상치 못한 출연자가 있었으니, 바로 구수한 뚝배기 같은 오동잎 가수 최헌! 그의 현란한 영어 실력에 후배 박상민은 넙죽 큰절까지 올렸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최헌의 기막힌 영어 비결은 무엇일까?

"학창 시절 정말 영어를 싫어했어요. 공부해도 별로 점수도 잘 안 나오고. 그런데 제가 밴드를 처음 시작했던 1970년대에는 가요보다 팝송을 많이 불렀거든요. 리드보컬을 하면서 노래를 하는데 가사의 뜻을 모르니까 전혀 감정이입이 안 되더라고요. 어찌나 답답하던지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영한 사전을 펴들고 단어 하나하나를 해석했죠. 뜻을 알고 부르니까 노래가 잘 불리데요."

이렇게 시작한 영어에 어느새 재미까지 솔솔 붙어 노래 듣는 시간보다 회화 테이프 듣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심지어 지금까지도 가장 즐겨보는 프로그램이 EBS 영어회화라고. 만일, 노래를 업으로 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잘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겸손해 하는 그에게 '가수'라는 직업은 영어를 선물로 안겨줬다. 어디 그뿐인가, 아직도 가슴이 설렌다는 그 사랑스러운 아내 덕분에 다른 외국어도 마스터했다고 하는데.

"81년 아내를 처음 만났는데 제가 얼굴이 알려져 남들처럼 공원이나 명동거리에서도 맘 놓고 데이트를 못했어요. 주로 집에서 만났는데 둘이서 뭘 할까 고민하다가 얼마 전 일 때문에 일본에 갔을 때 말이 통하지 않아 밥도 제대로 못 먹었던 생각이 나더라고요. 아, 이거다 싶어 이번 기회에 일어를 배우기로 했죠."

학원이나 개인과외는 고사하고 무작정 일어 회화 책과 테이프를 사서 독학했다. 100일 정성 데이트와 일어 공부 덕분(?)에 3개월 뒤 결혼식을 올렸고, 아내와 함께 일본에 갔다. 그의 원활한 의사소통에 감명받은 아내의 눈길은 실로 존경이었다. 더 큰 감동을 위해 지금도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는 최헌은 한 달 전 중국어 회화를 새롭게 시작했다.

"중국어 끝나면 스페인어에 도전할 거예요. 왜냐고요? 노후를 위해서죠. 아내 손 꼭 잡고 여행하는 것이 꿈인데 그때 꼭 필요할 것 같아요."

미국 뉴욕주립대 의대 학장인 마이클 로이진 교수는 호적 나이보다 젊어지는 여러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그중에서 평생 무엇인가를 배우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2.5년 젊어진다고 하는데 최헌의 언어 학구열은 25년은 더 젊게 하는 비결일 것이다. 아마도.

이현주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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