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허영호, 자충과 꽃놀이패로 무너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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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제10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예선결승 하이라이트>
○ . 허영호 4단(한국) ● . 芮乃偉 9단(한국)

허영호 4단은 올해 19세의 신예 강자다. 프로 연륜은 불과 4년이지만 이미 농심배 국가대항전에 한국 대표로 출전한 적이 있고 오스람코리아배에서 3위를 한 강호다. 한국리그에선 2장과 3장을 오가며 활약하고 있다. 한국랭킹은 루이 9단이 26위, 허영호 4단은 39위. 허 4단은 지난해에 비해 약간 부진한 편이다.

장면1=흑?로 몰리는 순간 백은 숨이 꽉 막히는 느낌에 빠져든다. 백돌이 포도송이의 자충 형태여서 이었다가는(보통은 잇는 것이지만) A의 도배를 당한다. 프로바둑에서 도배당하는 것은 곧 죽음이다. 그렇다고 곧장 패를 하자니 팻감이 없다.

허영호 4단은 고통스러운 장고 끝에 멀리 80으로 날아든다. 팻감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과감한 변신도 어딘지 나사가 하나 빠진 듯한 느낌을 준다. 우선 82에서 흑이 손 빼고 83에 때려내니 당장 이쪽의 불길을 잡는 게 더 급해졌다. 이쪽 패는 결코 져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변 쪽에 섣불리 패를 쓰는 것은 큰 손해가 될 공산이 짙다. 다행히 84에 손해 없는 팻감이 하나 있어 일단 86(백△의 곳)으로 죽음을 면한다.

장면2=흑도 팻감이 없다. 그러나 흑은 꽃놀이패. 마음 놓고 87로 우변부터 결정한다. 상당한 이득이다. 백도 92의 팻감을 이용해 94(백△의 곳)까지 흑을 단수로 몰아넣는 데 성공했다.

하나 이미 배부른 흑은 95, 97로 두 점을 잡고 패를 끝낸다. 바둑은 물론 흑이 불계로 이겼다.

백은 갖은 고생 끝에 도배를 피하며 좌상을 잡아내긴 했으나 우변과 중앙에서 흘린 피가 너무 많아 속수무책이었다.

루이 9단은 상대를 자충으로 몰아넣는 멋진 한 수로 본선 티켓을 손에 쥐었다. 그녀는 이번 대회 세계 32강 중 유일한 여성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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