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제자 졸업시키고나면 왜 허무한 생각이 들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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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얼마전 은사님이 회갑을 맞으셨다. 선생님은 오랫동안 모교에 봉사하셨고 또 젊은시절의 정열을 전시의 어려운 사정에 있던 모교를 위해 쏟으신것을 알고있는 제자들이 열심으로 모여 그 날은 큰 잔치가 되었다. 갓 졸업한 어린 제자로부터 30년전의 피난시절 부산천막교사의 추억을 나누어 갖는 그날의 모임은 선생님께는 뜻하지 않았던 큰 놀라움이셨던듯 깊은 감회에 젖어 이렇게 말씀하신것으로 기억된다.
『흔히 여자대학에 있다보면 허무만 남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여자대학에 들어온것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습니다.』모두가 큰 박수로 이 말씀을 환영했지만 한편 나는 이런 생각을 지을 수 없었다. 『여자대학에서의 교육의 보람을 느끼지 못하게하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어설프게 대학의 강단에 선지 벌써 20년이 넘었다. 그러나 여자대학에만 있었기 때문에 이 허무감을 또다른 경우와 비교하여 실감있게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나는 매일 보람을 느끼며 살고있는 중이다.
학교라는 곳에 늘 20대초반의 젊은이들과만 어울리는 곳이기 때문에 늙어가는 자신을 잊고 마냥 젊은 기분이어서 좋다. 그리고 여학생들은 표현이 풍부해서 늘 잔정이 오가서 즐겁다.
때때로 책상을 장식하는 꽃한송이나 졸업한 제자가 보내주는 작은 카드와 같은 다정한 마음의 표현이 사는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것이다. 『사내녀석들 뻣뻣한게 재미가 없어서』일부러 1주일에 한번씩 우리학교에 출강오시기를 퍽 오랜 강사님도 계신 터다.
그러나 이런 인간관계의 차원이 아니라 투자의 사회환원이라는 측면에서 교육자의 보람을 찾는다면 이 허무감은 여성문제와 관련된다. 남학생은 졸업하면 어떤자리이건 사회에서 일하고 있어서 뜻하지 않는 곳에서도 제자를 만나게되어 직업의 보람같은 것을 느끼게 해주는데 여학생은 아무리 열심히 키워 놓아도 졸업해 결혼하고 나면 영 가정으로 사라져 버리기때문에 보람을 확인할수가 없다. 사실 교단 20, 30년의 보람이 무엇이겠는가? 유능한 일꾼으로 사회에 이바지하고 있는 제자를 통해 느끼는 대견함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물론 모든 여성이 사회참여를 통해서만 공헌하는것은 아니다. 좋은 가정을 이룩하는데 전력을 다하는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많은 여성가운데서 대학가지 올라온 소수의 여성에게는 아무래도 감당해야할 책임이 더 많은 것같다. 사실 신입생은 모두 전문직업인으로서 사회에 참여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들어온다.
그런데 졸업하고나면 남녀의 길이 그렇게도 달라지는것은 무엇때문일까? 학교교육의 질일까, 사회제도일까, 아니면 여성자신의 의식구조인가? 여러요인의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교육당사자로 하여금 좌절을 느끼게하고 나아가 여성고등교육의 의의를 위혐하는것이 아닌가 생각되는 것이다.
흔히 생각하기를 대학은 입학만하면 졸업하기는 쉽다고한다. 그러나 여대생은 힘들게 대학을 졸업하고 있다.
취직·진학·결혼이 당면문제로 다가오고 그들은 참으로 큰 결정을 자신이 내리지 않으면 안되는 시기에 있는것이다.
결혼을 배제할수 없고, 결혼과 함께 직장을 그만두어 햔다는 관계도 있고, 또 결혼과 양립시키는 경우 가사의 부담이 힘겨운 어려움으로 따른다.
그러나 나는 여성이 참으로 자신의 능력을 확인하고 자기자신의 직접성취를 원한다면 그것을 이룩하는 방법도 지혜롭게 강구되리라 믿는다. 그래서 나는 지금 졸업병을 앓고 있을 졸업반학생들에게 이렇게 당부하고 싶다. 먼저 참으로 내가 원하는 길이 무엇인가 확인해보라고. 그리고 그목적은 꼭 성취하고 말겠다는 의지로 밀고 나가면 방법도 보이고 무거운 부담도 가볍게 느껴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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