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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과 대안:국회 벽 못넘은 쌀 협상

"연내 못하면 완전 개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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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농민 지원책 더 나와야"

쌀 협상 비준동의안 처리를 두고 정부.여당과 민주노동당.농민 단체가 첨예한 대립을 보이는 가운데 각계 전문가들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왼쪽부터 박노형 교수, 윤장배 정책관, 강치원 교수(사회), 강기갑 의원, 서정의 회장.변선구 기자

쌀 관세화(완전 개방) 유예협상에 대한 국회 비준이 5개월째 지연되고 있다. 23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가 비준 동의안을 상정하려 했으나 민주노동당의원들의 실력 저지로 무산됐다. 정부는 올해 안에 국회가 비준을 하지 않으면 쌀시장을 완전 개방해야 된
다며 조속한 조치를 국회에 요구하고 있다.

반면 민주노동당과 일부 농민단체는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이 타결될 때까지 기다렸다 득실을 따져 비준해도 늦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제적 망신을 당할 수있다는 우려가 있는가 하면, 농민에 대한 지원책이 미흡하다는 주장도 있다. 전문가들로부터 쌀 협상안 비준에 대해 의견을 들어봤다. 편집자

토론자
강기갑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박노형 고려대 법대 교수
서정의 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회장
윤장배 농림부 통상정책관
강치원(사회) 강원대 사학과 교수

▶사회=쌀협상 비준 동의안 처리에 대한 입장을 밝혀 달라.

▶윤장배=2004년 한 해 동안 꼬박 협상을 해서 쌀 관세화를 10년간 더 미루는 데 합의했다. 만약 비준 동의안 처리가 계속 지연되거나 부결되면 어렵게 얻어낸 관세화 유예를 지켜내는 데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국회가 비준안을 조속한 시일 내에 통과시켜 주길 바란다.

▶박노형=비준안 처리를 하지 않는다면 자신을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 된다. 쌀협상은 우리나라의 필요에 의해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원했던 관세화 유예에 합의해 놓고 비준을 하지 않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정기국회에서 처리한다 하더라도 (올해분 의무 수입 물량을 채우려면) 시간이 상당히 빠듯하다. 통상적으로 국제입찰 과정은 3~4개월 걸린다.

▶강기갑=민주노동당 의원들이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의 비준 동의안 상정을 막은 것은 죄송하다. 그러나 절박한 이유가 있다. 쌀은 농민의 문제일 뿐 아니라 주권과 생명의 문제다. 국민의 체통을 지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행정부는 입법부와 사전 논의도 없이 비준안을 올렸다. 열린우리당 최성 의원이 농업 관계자 2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DDA 협상 결과를 보고 비준안을 처리하는 것이 좋다는 대답이 절반 이상이었다.

▶서정의=DDA 협상 결과에서 중요한 것은 관세 감축을 해야 하는 품목이 얼마나 되고, 관세 상한선이 얼마로 정해지느냐다. 쌀이 (관세를 상대적으로 덜 줄여도 되는) 특별품목으로 분류된다면 관세화에 따른 부담이 줄어들겠지만 DDA 협상의 기본 방향이 관세를 없애자는 것이어서 결과를 단언할 수 없다. 농민단체가 무조건 반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인 대책이 마련된다면 달라질 수도 있다. 우루과이 라운드(UR) 협정 발효 이후 농민 소득이 크게 줄었다. 농민들의 요구는 잘 먹고 잘 살자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것이다. 비준 전에 정부가 농민이 수긍할 만한 대책부터 내놓아야 한다.

▶사회=비준안이 법적인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또 정부가 너무 서두른다는 비판도 있다. 한편에선 비준안 처리가 늦어지면 대외 신인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걱정한다.

▶강기갑=지난해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에 낸 이행계획서는 쌀과 관련된 것이지만 실제 협상에선 쌀뿐 아니라 사과.배.쇠고기.오렌지 등의 수입과 관련된 부분도 포함돼 있다. 그런데 비준안에는 이런 부분이 빠져 있다. 비준안 처리는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소관이지만 쌀 문제의 주관 상임위원회는 농림해양수산위원회다. 국회법상 안건을 상정하려면 관련 상임위의 의견을 반드시 들어야 하는데 농해수위 의견을 듣는 절차가 생략됐다. 또 쌀협상 결과에 대한 근본적인 영향분석 보고서도 없다.

▶윤장배=DDA 협상 결과를 보고 비준안 처리 여부를 결정하자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12월 홍콩 각료회의에서 협상이 타결될지도 불확실하고, 설령 다자간합의가 되더라고 구체적 사안은 이해당사국 간 협의를 통해 정해야 한다. 한국이 (상대적으로 관세 감축폭이 작은) 개발도상국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을지도 양자 간 협의 과정에서 정해질 문제다. 적어도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때까지 쌀 협상 합의 사항을 이행하지 않고 버티면 통상 분쟁이 생기고, 어쩔 수 없이 관세화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강기갑=정부는 소극적이고 굴욕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홍콩 WTO 각료회의가 끝나면 세부적인 것까지는 합의가 안 되더라도 윤곽은 드러날 것이다. 또 DDA 타결이 늦어지면서 UR 때 2004년으로 정해졌던 각종 기한이 1년씩 연장되고 있다. 한국에 대한 10년간의 쌀 관세화 유예도 자동 연장된 것으로 봐야 한다. 중요한 변수인 DDA 협상이 끝나지 않아 비준을 할 수 없다는 사정을 이야기하면 얼마든지 (WTO나 다른 협상 상대국이) 받아들일 것이다.

▶박노형=쌀 협상은 DDA와 별개의 문제다. UR 때 농산물도 원칙적으로 자유무역을 하자고 합의한 뒤 단번에 할 수 없으니 2000년부터 관련 협상을 하기로 약속했었다. 이 협상이 결론을 내지 못하고 DDA 협상이라는 틀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쌀 협상과 맞물려 있는 것이 아니라 별개의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다.

▶윤장배=쌀과 DDA 협상을 한 틀에서 보는 것은 위험하다. 쌀 협상의 근거는 국가 간에 체결한 농업협정문에 법적 근거가 있는 것이고, DDA 협상은 각료 간 합의를 통해 앞으로의 원칙을 정하는 것이다.

▶강기갑=DDA 협상에서 쌀이 직접적으로 다뤄지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WTO 체제로 대표되는 세계 무역 질서의 흐름 속에 쌀과 DDA가 함께 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큰 흐름이 바뀌면 부분적인 해석은 달라질 수 있다. DDA 타결이 늦어졌기 때문에 이에 따라 쌀 협상을 끝내야 하는 시한도 연장됐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윤장배=지난해 8월 WTO 이사회는 DDA 타결을 위한 각료회의를 연기하면서 협상 지연에 따른 해석상의 논란을 막기 위해 못 박아 둔 것이 있다. 당시 결정문 2항에 보면 '일반이사회는 분쟁해결 절차와 기존의 WTO 협정의 해석에 본 결정문을 이용하지 못한다'고 명문화돼 있다. DDA 타결이 늦어진다고 해서 쌀 협상 시한을 비롯한 각종 협정의 해석이 달라질 수 없다는 얘기다.

▶박노형=WTO가 DDA와 관련된 각료회의의 연기 결정을 한 것은 지난해 8월이다. 한국이 쌀 협상을 끝낸 것은 연기 결정이 난 이후인 지난해 12월이고, 올 4월에 WTO는 쌀 협상 결과에 대한 검증을 완료했다. DDA 협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서도 WTO가 쌀 협상과 관련된 절차를 진행했다는 사실 자체가 DDA와 쌀 협상이 별개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강기갑=정부가 잘못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행계획서를 내지 말라고 했는데 정부는 2004년 내에 반드시 협상을 끝내야 한다며 이행계획서를 제출한 것이다. 다행히 이행계획서에 비준 시한을 명시하진 않았다.

▶서정의=쌀 협상 이행을 DDA 이후에 할 거라면 정부가 아예 협상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DDA 결과가 나오면 그때 가서 관세화 유예를 계속하는 것이 좋은지 관세화로 전환할지를 결정하면 된다. 농민들이 비준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쌀 협상 결과 자체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사회=구체적으로 협상 결과, 즉 비준안의 내용에서 문제가 되는 점은 무엇인가.

▶강기갑=의무수입물량(MMA)이 지난해 말 4%에서 단계적으로 7.96%로 늘어난다. 지금까지 수입 쌀은 가공용으로만 쓰였지만 수입량의 최대 30%가 밥쌀용(가정이나 식당에서 밥 짓는 용도로 쓰는 쌀)으로 시판된다. 또 앞으로 10년 뒤에는 다시 협상을 해야 하는 것인지 자동으로 관세화를 해야 하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국가별로 쿼터를 정해준 점이나 시장 점유율을 사실상 보장해 준 점도 문제다.

▶서정의=농림부에서 이면합의는 없다고 주장했으나 결국 이면합의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추곡 수매제로 유지해 오던 양정제도를 공공비축제(정부가 시가에 쌀을 사서 시가에 방출)로 단숨에 바꿨다. 지금까지 쌀값이 오르면 정부는 정부미를 방출해 가격 상승을 막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쌀값을 시장에 맡긴다고 한다. 55년간 유지해 온 제도를 바꾸려면 적어도 충분한 유예기간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

▶윤장배=쌀 협상은 처음부터 우리에게 불리한 협상이었다. 관세화 유예라는 예외적인 조치를 또 연장해 달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20년간 관세화가 유예된 나라는 한국뿐이다.

▶사회=이면합의에 대한 비판이 있었는데 정부 입장은 무엇인가.

▶윤장배=이면합의는 없었다. 국정조사 때 국회의원들이 합의문 전체를 봤고, 조사결과도 이면합의가 없다는 것이었다. 기술적이고 절차적인 합의 사안이나 검사.검역이나 다른 농산물의 관세 문제 등 부가적인 협의사항을 이면합의로 보는 것은 곤란하다.

▶강기갑=이면합의 때문에 중국의 사과나 배, 아르헨티나 오렌지 등의 수입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쌀뿐 아니라 기타 농산물 수입 확대에서 오는 피해도 많다. 국정조사 때는 단순 열람만 할 수 있었기 때문에 협정문을 충분히 검토할 수 없었다. 협정문을 공개해야 한다.

▶윤장배=협정문은 양자 간 통상 문서다. 다른 나라도 공개하지 않고 있고 협상 상대국들도 공개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 국회에는 낱낱이 정리해 보고했다. 35일간 국정조사하면서 전문가가 동행해서 다 봤다.

▶박노형=국회 국정조사 때 아쉬웠던 점은 협상 과정에서 오고간 모든 문서를 다 보자는 것이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여러 번 스케치를 할 수 있다. 협상은 과정이 아니라 결과를 놓고 판단해야 한다.

▶사회=연내 비준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

▶박노형=비준을 안 하면 쌀 관세화 유예는 없던 일이 된다. 자동 관세화로 간다는 의미다. 재협상 가능성도 없다. 농업 협정상 쌀 관세화 10년 유예는 지난해로 끝났고, 추가 연장 여부는 지난해 중에 협상을 통해 결정하도록 돼 있다.

▶강기갑=WTO 제소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자동 관세화가 된다는 것은 잘못된 얘기다.

▶박노형=일단은 위반하고 재판받는 시간을 벌자는 발상은 곤란하다. 국제 규범을 객관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강기갑=DDA 협상 결과를 보고 비준 여부를 결정한다고 해서 다른 나라에서 제소하진 않을 것이다. 부결된다 해도 실질적으로는 제소 기간이 1년에서 15개월 이상 걸린다. 대외적인 신뢰를 잃는다고 하는데 이 중요한 사안을 어떻게 DDA 결과도 보지 않고 결정할 수 있겠는가.

▶서정의=WTO 140여 개 회원국 중 쌀을 수출하는 국가는 10개국 안팎인데 국제 신인도가 떨어져 봐야 얼마나 떨어지겠느냐. 국회에서 비준을 안 하는 것은 후속 대책이 미흡하기 때문이다.

▶사회=쌀과 관련된 농업 지원 대책은 어떤 점이 보완돼야 하는가. 또 비준안 처리와 관련해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서정의=정부는 농민단체의 요구를 많이 들어줬다고 하지만 우리가 요구한 것 가운데 돈이 들어가는 직불제 같은 것은 모두 부분적으로만 수용했다. 부채 문제에 대한 추가 대책도 필요하다.

▶박노형=정부에 대해 협상에서 배짱을 가지라고 요구하는데 이번만큼은 국회의원들이 배짱을 갖고 큰 결정을 해야 한다. 통상 문제는 국제 규범에 대해 객관적으로 접근해야지 정서적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

▶강기갑=전체 경제나 통상도 중요하지만 농업은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관련된 산업이다. 세계적으로 식량 위기가 현실화되고 있다. 과거 어업 협상이나 마늘 협상 등에서 국회가 제대로 감시하지 못해 국익을 해치고 국론이 분열되기도 했다. 국회가 행정부의 통상 협상에 대해 감시자로서 역할을 다해야 한다.

▶윤장배=비준동의안 처리는 조속한 시일 내에 반드시 돼야 한다. 농업.농촌 지원 대책이 미흡하다는 지적에 대해선 신중히 검토하겠다.

정리=김영훈 기자 <filich@joongang.co.kr>
사진=변선구 기자 <sunnin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