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측근모두 불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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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히틀러」의 일기는 그가 권력을 잡기전인 1932년 6월부터 시작되고 있다.
그의 일기중 제1권을 6월부터 9월까지 기록하고 있는데「히틀러」는 이부분에서『이전에 기록했던 문서들은 부분적으로 엾어졌기 매문에 이제는 당(나치)의 자료보관실에 두고 이용할 생각이다』고 기록하고 있다.
뒤이어 그는『이제부더 나의 정치적활동과 구상들을 기록, 다른 정치가들 처럼 후세를 위해 보존할 작정이다』(32년11월19일)고 밝힌 것으로 되어있다.
이로부터 10년뒤인 43년9월1일자에서는 또 「마르턴·보르만」(「히틀러의비서」)이일기를 써서 무엇할 생각이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도 언젠가 젊은 세대에게 길을 터줄 시기가 오게될때 은퇴 할것이고 그때를 대비하여 기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야 현재 일어난 일을 정확하게 알려줄수 있게 될것이다』고 기록된 것으로 밝혀지고있다.
『불면증이 더 심해지고 있다』(38년4월)「에바」(「히틀러L의 연인)가 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의사의 말로는 30대 여자에게 가끔 있는 가임신인데 「에바」는 유산이라고 믿고있다.젊은 여자가 진정 나를 필요로 하고 있을때 너무 바빠 혼자 있도록 내버려두는 일이 너무 많다.「에바」가 이해심많고 젊으니까 곧 회복되기롤 바랄 뿐이다』(38년4월30일)는 기록이 눈에 띈다.
흥미로운것은 그의 측근 나치 간부들을 대부분 경멸하는듯한 투로 기록하는 한편 군대 간부들을 불신하고 있는 부분이다.
또 당시의 다른나라 정치 지도자들에 대해서는 매우 냉소적인 표현을 하고있다.
나치친위대 (SS)의 대장이었던「하인리히· 히믈리」에관해서『 히틀러」가 쓸데없이 나를 감시하고 있다. 그친구는 E(「 에바」를 가리킨듯)에 대해서도 기웃거리고 있다』 (35년4월).
『그 친구를 당기위원회에 넘기 겠다고 윽박질렸다.귄력야욕으로 가득찬 위선적이고속샘을 알수 없는 이 하잘것없는 노랭이에게 내가 어떤사람인지를 보여주어야겠다』(39년11월19일) .
나치의 천재적 선전상이었던「괴벨슨 를 두고는 『이꼬마「괴벨스」가 다시 옛날 버릇이 도져 여자와 시시덕거리고었다. 내 주변과 당간부중에서 이따위 정사가 벌어지는 것을 윈치 앉는다는 비밀지시를 내려야겠다』 그 기록돼있다.
공군상을 지낸「해르만·괴링」을 두고는 「괴링」의 기적의 공군기들은 무엇을 하고있는가』고 빈정되는 부분도눈에 띈다.
군부지도자들에 대한 불만은 1941년 소련을 침공한 직후에 나오고있다.
『이 늙어빠진 장교들은 계급이나 훈장,부귀를 탐내면서 명령에는 복종 않는다』 그리고는 소련침공 7개월이 지난뒤에도 소련이 끈질기게 저항하자 「스탈린」을 이렇게 칭찬하고 있다. 『「스탈린」은 도대체 무슨 재간을 가지고있는 것일까. 군대에 장교라고는 하나도 남지 앓았다고 생각했지만「스탈린」이 해치운 일 (대람숙청)은 옳았다. 지금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군부의 재편이다』
1938년 9월초 채코영 토의 일부를 점렴하기로영·불·이의 동의를 얻어 뮌헨조약을 체결한 다음에는 이렇게 기록하고있다. 『 「챔벌린」(영국수상)은 나보다 한수 높았다.「뭇솔리니」나「달라디에」(프탕스수상) 에게는 전혀 다른조건을 내세울수 있었는뎨 이 교활한 여우 「챔별린」 에게는 그것이 통하지 않았다』 (38년 9월30일).「뭇솔리니」에 대해서는 아주 얕잡아보는 투로『그는 나와 맞서볼 용기조차없다. 그래서「괴링」에게「뭇솔리니」는 내가 임명한 로마주재 인사로 여기고있다고말했다』고기록돼 있다.
44년7월「히틀러」를 암살하려는 폭발사건이 있고나선 『머저리들 같으니…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이런 풋나기들이 벌써 내각까지 꾸며놓고 있다. 명단이라는게 건달들의 리스트같다』
2차대전이 시작되고나서는「히틀러」가 영국과 화해하고 싶어하는 생각을 담은 부분도 주목을 끈다.
전쟁중 비행기를 타고 영국으로 「강화」협상을 벌이기위해 잠입,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당시 부총통「루돌프·헤스」에 관한 부분에서는「히틀러」가 영국과 평화관계를 맺기위해 노력했으나 반응이없으니까 비밀교섭을 위해「히틀러」가 직접 보낸 것처럼 묘사돼있다.
아직까지 유일한 나치전범으로서 베를린의 슈판다우형무소에 40년가까이 갇혀있는「헤스」 는 영국비행이 「히틀러」 도 모르는 자신의 단독행동이라고 주장해왔다.
60권으로 구성된 일기의 최종부분에는 날짜가 기록 돼있지 않으나 연합군이 베를린을 포위한 가운데 벙커에서 쓴것으로 미루어 45년4월 16일자일 것으로 추축된다.
『오랫동안 예상되던 공세가 시작됐다.우리에게 하나님의가호가 있기를…』
그가 쓴 일기의 마지막부분이다.「히틀러」가 사망 한것은 이로부터 열홀뒤 였다.
【본=김동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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