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더미 같은 현안 거의 거론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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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6일간에 걸친 국회본회의의 대정부질문이 21일로 끝났다. 정치·경제·사회의 3개의제로 나누어 21명의 의원들이 발언한 이번 대정부질문은 고문치사·정치의안등 많은 현안들이 겹친데다 의원들이 다음 총선거를 본격적으로 느끼기 시작할 후반국회의 출발이었다는 점에서 처음엔 다소간의 파란도 예상했었으나 이렇다할 정치적 곡절이나 문제발언없이 평온하게 끝났다. 그러나 평온했던 분위기나 구사된 용어의 평수위처럼 발언내용까지 평화스런 대화정국을 예고해주는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우선 정치문제에 있어서 여야간의 이견은 여전히 심각하다는 사실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야당측은 현재의 정치상황을 덜 민주적이라고 보고있으며 따라서 민주화가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보았고, 여당측은 정치인의 청렴과 대화정치를 강조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다 보니 야당은 민주화를 위한 정치의안의 관철을 재다짐하게 되고 개정을 반대하는 여당측은 현행법을 옹호하거나 정치문제는 별로 언급않고넘어갔다.
정치의안중에서도 현재의 선거제도로는 평화적 정권교체가 불가능하다는 야당측의 선거제도개선론은 앞으로 계속 정계의 큰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평화적 정권교체와 그에 따른 단임정신이 정부여당의 가장큰 정치적 자산이 되고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이와 정반대되는 야당의 선거제도개선론이 과연 어떤 형태로 소화·흡수될는지 주목된다. 이 문제가 아직은 간헐적인 야당의 주장으로 제기되고 있지만 이 문제의 해결없는 여야간의 합의는 지엽적이 될 우려가 많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이번 질문에서 제기된 개혁설은 여러모로 관심을 끈다.
김상협총리는 이를 사실무근의 낭설이라고 말하고 통일헌법제점검토 작업이 와전된 것이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이 문답에서 지적된 것처럼 시중에 그토록 많이 나돈다는 개헌설이 김총리의 이답변 하나로 쉽게 다 진무라는 보장은 없는 것같다.
과거에도 개헌이 먼저 새로 시작되어 부인과정을 거쳐 결국은 이뤄진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여당방침대로 정치의안이 전혀 봉쇄될 경우 지난2년간 오로지 이 주장만으로 버텨오다시피한 야당지도부는 당내에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할 가능성이 많고 정국은 경화되기 십상일 것이다.
따라서 여야는 이번 임시국회의 원만한 마무리를 위해서라도 이 문제의 돌파구를 열어야할 입장이다.
예를 들어 국회법중 대세에 지장이 없는 부분을 찾아 공동으로 고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한다든가 여당측이 강조하는 지방자치제실시의 선행조건 충족을 위한 공동검토방안을 찾아보는 노력은 함직하다.
정치문제에 비해 경제분야에서는 의의로 여야의 공감대가 넓었다.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거의 여야의 구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비판론이 높았다.
△산업구조는 개편돼야 하며 중소기업과 농업지원이 강화되야 한다△성급한 수입자유화는 안될 일이다△충격적인 경제조치는 없어야하며 경제정책에 일관성이 있어야한다△엘리트 경제 관료의 독선적인 정책추진은 없어야한다△지수중심총운규모 위주의 경제정책에는 문제가 있다는 등의 지적·비판에는 여야가 없었다.
현안으로 대두된 재벌토지매입사건과 삼회증권사건도 경재분야질문의 주요트집이 됐지만 이미 알려진것 이상으로 밝혀진 새로운 사실은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답변이 질문내용을 명백히 해명못한 대목도 있었던 느낌이다.
사회분야에 관한 질문은 때마침 터진 대도사건과 대구디스코클럽화재·고문치사사건등으로 신랄한 발언이 많았다. 사건의 문제점을 추궁하는 발언에 정부축이 거듭 사과·유감의 뜻을 표하고 재발방지책과 개선책을 내놓았지만 인매문제에 관해서는 별로 유의할만한「결의」나 소신의 표명은 없었던 것 같다.
전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교육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된 것은 간과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많은 의원들이 오늘의 교육현실에 심각한 우려와 개탄을 쏟아놓았는데 확실히 교육문제에 관한 인식에 있어서는 행정부와 입법부간에 엄청난 거리가 있었다. 정착된 제도아래 열심히 한다고 해도 다른 나라를 따라잡기 어려운 교육문제가 아직도 끊임없는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심상히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졸업정원제·내신제·교수추천제등에 관한 많은 문제점의 지적이 있었지만 정부축의 답변은 요컨대 기준방침대로 나간다는 게 큰줄거리였다.
본회의의 문답을 들어보면 결국 행정부측은 의원발언에 별영향을 받지 않는듯이 보이는게 사실이다. 의원들이 자기발언의 설득력을 강화하기위해 갖은 절절한 표현과 간곡한 논리를 다 동원하는데 비해 정부측의 답변은 미리 만들어둔 업무계획이나 답변준비의 기정룰에 따라 대체로 사무적으로 개진되는 감이었다.
대정부질문에서 제기된 많은 문제들은 22일부터 열리는 상위로 넘어가게 된다. 문답이 다같이 낭독형이어서 별로 토론이라고는 없었던 본회의와는 달리 상위에서는 1문1답식 토론으로 재기된 문제를 다룰수 있다.
따라서 상위에서 어떻개 매듭짓고 결론을 내리느냐에 따라 대정부질문의 보람이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상위에서마저 의원들이 영향을 주지 못하거나 정부측이 영향을 안받으려 한다면 국회과정의 유익성은 공허해지고 말것이다.

<송진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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