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외교관의 추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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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핀란드주재 북한 대사 유재한이 기피인물로 선언돼 추방령을 받은 것은 북한외교공작의 무모성을 다시 한번 전 세계에 드러내준 것이다. 핀란드정부의 공식성명은 『유재한이 IPU (국제의회연맹) 총회와 관련, 핀란드법률과 외교관의 처신에 관한 빈 협정을 위반했다』고 추방이유를 밝히고 있다.
핀란드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바로 이 추방이유가 더 명백해진다. 유재한은 오는 24일부터 헬싱키에서 열리는 IPU집행위원회에서, 올 총회의 개최지를 서울로 결정한 작년의 총회 결의를 뒤집기 위해 몇몇 국회의원에게 뇌물공세를 폈다는 것이다. 현금으로 대략 5천 달러에 이르는 뇌물은 핀란드 의원말고도 몇몇 아프리카의원에게도 제의했으며 일부는 이를 수락했다.
북한 외교관들은 76년에도 북구 여러 공관에서 마약·담배·주류를 밀수하다가 적발돼 대거 추방령을 받은 적이 있으며, 특히 핀란드로부터는 대리대사 장대회를 비롯, 공관원 전원이 추방된 불미스런 전력을 갖고 있다. 더구나 지난해 9월에는 뉴욕에 주재하는 유엔대표부 직원 오남철이 여인추행 미수로 당국의 체포를 면하려고 7개월 가까이 아파트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민망스러운 작태까지 연출했었다.
북한이 이 같은 전비를 뉘우치기는커녕 또다시 세계의 웃음거리가 될 일을 자행하는 것은 한마디로 북한외교의 저질성과 북한 지도층의 무모성을 폭로한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해외에 주재하는 북한외교관들은 한번 평양의 지령이 떨어지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저돌적으로 덤벼들어 상대방의 불쾌감을 사거나 외교가의 웃음거리가 된다.
이것은 워낙 북한체제가 경직된 데다가 김일성에 대한 충성과 아부 없이는 살아 남을수 없는 북한체제의 특수성 때문이다. 독재와 통제사회의 만성적 증상이라고도 할수 있다.
IPU총회의 서울개최는 작년 10월 로마총회에서 회원국의 압도적 다수의 찬성으로 결정된바 있는데 북한이 이를 번복시키려고 시도한 자체가 벌써 무리였다.
북한측은 이미 13개국에 사절단을 파견, 서울총회를 번복시키는 공작을 폈다. 아마 이들 전부가 뇌물을 뿌리고 다녔는지는 몰라도 일부 회원국은 북한의 공작대로 개최지 변경의 건을 사무국에 제출했다.
그러나 이것 자체가 성사되기 어려운 터에 이 같은 외교적 추문으로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으니 북한의 시도는 차라리 없는 것만 같지 못할 것이다.
부질없는 남북 대결이 민족의 역량을 낭비함은 다 아는 일인데도 김일성만이 이를 외면함은 얼마나 완미하고 무모한가를 다시 한번 말해준다..
그렇지 않아도 어제(4월15일)는 김일성의 71회 생일이며 북한은 다시 한번 경축광란에 휩싸이고 있다.
온 선전수단을 동원해 「대를 이은 충성」을 역설하고 선물 보내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참 우습고 망측하고 딱한 일이며 이 같은 북한의 이미지가 일부 외국인에게는 전체 한국을 이해하는데 역작용을 할 것 같아 두렵기도 하다.
최근 일본 대장성과 은행들은 북한을 31개 외채상환 불능국가의 하나로 분류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많은 돈을 해외에 뿌리고 또 생일축하 소동을 일으키는지 도저히 상식으론 납득하기 어렵다.
멀지않아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이 서울에서 열리는데 북한은 이를 민족화합의 계기로 삼을 생각은 않고 시기와. 질투로 대결의식만을 고취하고있으니 「계란으로 바위 치기」는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북한은 제발 이성을 찾아 전체 한국인의 이미지를 왜곡시키는 짓을 하지말고, 민족화합의 대 차원에서 쓸데없는 대결의식을 버리라고 충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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