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것까지 먹어야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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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건강· 자연식품이 우리나라에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7O년대 후반부터다. 각종 공해와 인스턴트식품에 은근한 공포를 느끼고 있는 현대인의 불안한 심리에 편승해 붐을 이루고 날로 번창해 온 것이다.
이들 자연· 건강식품은 초기에는 주로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재배한 곡식이나 채소정도를 지칭하는데 그쳤으나 최근에는 선인장의 일종인 알로에· 꽃가루· 굼벵이· 지렁이· 뱀에 이르기까지 건강식품보다는 만병통치약으로 터무니없이 과대선전, 번화가에서도 예사로 팔고 있다.
검찰은 이들 건강식품이 의약품이 아니라 단순한 식품이거나 식용물질에 불과함에도 「만병통치약」 인 것처럼 허위선전하고 있음을 지적, 수입상과 판매업자 13명을 약사법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27명을 입건했다. 이른바 「건강식품」 이 처음으로 사직당국의 철퇴를 맞은 것이다.
검찰조사는 현재 시중에 나들고 있는 건강식품은 4O여종이고 이중 특효약으로 허위· 과대선전을 한 것이 16종으로 밝혔다.
이처럼 일종의 식품에 불과한 것들이 약품행세를 당당히 해올 수 있었던 것은 그것들의 치료효과가 전무하지는 않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민간약의 신비스런 효험을 성장과정에서 겪어온 한국인으로서는 「만병통치의 영약」 이란 구절이 떨쳐버리기 힘든 유혹일수 밖에 없다.
이른바 「만병통치약」 이 붐을 이루는 또 다른 이유는 병원가료의 어려움과 현대의술에 대한 불신도 없지 않다.
병원에 가서 진찰 한번 받으려면 2, 3시간 ,기다리기가 일쑤요, 특히 장기치료를 요하는 성인병의 경우 그렇게 어려운 절차를 거쳐 진료를 받아도 단시일 안에 병세의 차도나 완쾌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중도에 포기하고 미신적 감언에 솔깃하게 된다.
맹목적 쾌락주의도 영약붐의 주범중의 하나다. 보신탕· 뱀· 굼벵이· 지렁이· 개구리등이 모두 정력에 좋다는 것들이다. 정력은 쾌락의 원천이고 따라서 저력에 좋다면 무슨 「악식」 도 서슴지 않는 요즈음의 세태를 적나라하게 반영한 현상이다.
검찰의 이번 단속은 때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업자뿐만 아니라 애호가들에게도 일대 반성과 경종을 준다는 점에서 다행한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단속도 중요하지만 국민들(소비자 내지 잠재적 소비자) 에 대한 계몽도 절실하다. 단속만 앞서고 과학적인 계도가 없을때 「영약」 은 더욱 비밀스런 루트를 통해 거래되면서 그 미신적 매력과 기대가치를 오히려 높이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는 국민적 자존심의 자각이다. 국민소득이 1천5백달러를 넘어서 선진국을 지향하는 국민으로서 언제까지 굼벵이· 지렁이 따위나 잡아먹는 「기괴한 사람들」의 기속을 고수해야 할 것인가.
나이는 들어가는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젊음의 쾌락이나 탐하려한다고 해서 어찌 세월을 거꾸로 흐르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자기 연령, 자기 분수에 맞는 가치기준을 설정할 일이다.
당국에도 부탁하고 싶은 것은 획일적· 감정적인 단속보다는 식품의 정확한 성분과 효능을 검사, 분석해 전혀 가치가 없는 것은 폐기 처분하되 건강식품으로서 가치가 있는 것은 그 효능을 정확히 명시하여 국민건강에 기여하도록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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