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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년 떠돌던 동학군 지도자 유골 안식처 찾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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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1996년 일본 홋카이도대가 한국에 반환한 동학군 지도자 유골. ‘한국 동학당 수괴의 수급(머리)’이라는 일본어 붓글씨가 씌어 있다. [중앙포토]

120년 넘게 방치된 동학농민군 지도자의 유골이 전적지(戰跡地)인 전북 정읍시 황토현에 안장될 가능성이 커졌다. 감사원이 8일 “동학농민군 지도자의 유골 안장사업의 추진이 부적정하다”며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유골 안장사업을 원활히 추진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참수된 농민군 지도자의 유골은 121년 동안 고국에 묻히지 못하고 떠돌아다녔다. 사연은 19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9월 일본인 사토 마사지로(佐藤政次郞)가 전남 진도군에서 우연히 유골을 발견한 뒤 무단 반출해 일본의 홋카이도(北海道)대학으로 옮겼다. 한 세기 가까이 잊혀졌던 유골은 95년 홋카이도대학 연구실의 창고에서 일본 아이누족 유골 5구와 함께 발견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유골에는 ‘1906년 진도에서 효수된 한국 동학당 수괴의 수급(머리), 사토 마사지로로부터’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한국에선 반환운동이 일어났고, 홋카이도대학 역시 반환에 협력하면서 96년 5월 국내로 송환됐다. 고국을 떠난 지 90년 만이었다. 그러나 땅에 묻히지 못하고 고국에서도 전주역사박물관 수장고에 18년 넘게 방치됐다.

 그러다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을 맞은 지난해 6월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가 황토현 전적지에 유골을 안장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후 망자의 고향이 전남 진도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문화재청이 “2017년 조성될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 묘역에 안장하는 게 합리적”이란 의견을 내면서 정읍시·진도군·전북·문화재청 등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다. 그러자 문화재제자리찾기(대표 혜문 스님)가 유골 안장사업에 대한 감사청구를 했고, 감사원은 “문화재청의 상급 기관인 문체부가 적극 나서라”는 권고를 하게 됐다.

 문체부가 이해관계를 조정하게 되면 121년 동안 떠돌던 유골이 드디어 안식처를 찾게 된다. 혜문 스님은 “동학군 장군의 유골이 고국에서 20년간 방치된 것은 우리 시대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라며 “관련 단체와 기관은 조속하게 해법을 찾아 안장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혜문 스님은 감사원 권고에도 불구하고 유골이 3·1절 전까지 안장되지 않으면 형법 제161조 사체보관 및 유골영득(遺骨領得·남의 유골을 취득해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 혐의로 관련 기관을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말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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