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0일 쓰고 불합격, 초봉은 비밀 … 구직자 울리는 '채용 갑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소셜커머스 기업 ‘위메프’가 신규 채용 지원자 11명에게 열흘간 정직원 업무를 시킨 뒤 전원 탈락시켰다가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뒤늦게 전원 합격 처리하겠다고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취업준비생(취준생)들의 명줄을 쥔 기업의 ‘갑(甲)질’ 아니냐는 지적과 함께 취준생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구직자 인권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사연은 이렇다. 지난해 12월 1일 위메프는 지역 마케팅컨설턴트(MC) 직군 2차 면접에서 14명의 인턴 합격자를 선발했다. 이들은 같은 달 8일 처음 출근을 했다. 위메프는 이들에게 “2주간 인턴 과정에서 ‘현장 테스트’를 거친 후 정규직으로 전환하며, 일부는 탈락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실제 MC들처럼 음식점·피부관리 업체 등과 계약을 체결하고 그 기록들을 보고하는 시험이었다. 지원자들이 따온 몇몇 계약은 실제 거래로 이어졌다.

 하지만 현장 테스트가 모두 끝난 같은 달 19일 저녁, 마지막까지 남은 11명의 지원자는 위메프로부터 e메일을 받았다. ‘계약을 10건 이상 따야 하는 기준에 미달해 불합격 처리했다’는 것이었다. 인턴으로 일한 20대 여성 A씨는 “기준이 ‘계약 10건’이란 건 사전에 고지되지 않았다”며 “많게는 8건까지 계약을 따온 지원자도 있었지만 돌아온 건 열흘간 일한 임금 55만원뿐이었다”고 말했다.

 이런 사실은 지난해 12월 말 취준생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지난 7일부터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위메프 회원을 탈퇴하자’는 움직임으로 번졌다. 논란이 계속되자 위메프는 8일 보도자료를 내고 “현장 테스트 참가자 11명 전원을 ‘최종 합격’으로 정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전원 채용’으로 바꾼 이유에 대해 위메프는 “소통 과정에 서툰 점이 있었다고 생각해 책임지는 차원”이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A씨는 “11명 중 10명은 돌아가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2개 사업부에서 4명씩 8명을 선발한다고 했는데 전원을 탈락시켰다. 거짓말을 한 회사를 어떻게 믿고 다니겠느냐”고 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지난달 20대 회원 57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5%가 ‘구직 과정에서 부적절한 대우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윤모(27·여)씨는 지난해 상반기 국내 중견 화장품 기업에 면접 을 보러 갔다가 기분 나쁜 일을 겪었다. 한 남성 면접관이 윤씨 왼손 약지에 끼워진 반지를 보고 “남자 친구가 있느냐” “입사 후 바로 결혼할 건가” “아이는 얼마나 낳을 계획인가” 등의 질문을 했다. 윤씨는 결국 탈락했다.

 기업들이 채용 과정에서 연봉을 알려주지 않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설모(27·여)씨는 2012년 상반기에 대기업의 해외영업 부문에 지원했다. 인사 담당자에게 “연봉은 어느 정도 되느냐”고 물었다가 “연봉이 낮으면 회사 안 올 겁니까? 아직 구직 생활 덜하셨네”란 대답을 들어야 했다.

 취업포털 사이트 잡코리아가 대졸 취준생을 뽑는 주요 기업 1000곳을 분석한 결과 급여 수준을 공개한 회사는 269곳(27%)에 그쳤다. 면접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CJ의 일부 계열사는 지난해 공채 면접을 본 지원자들에게 면접비 대신 CJ 포인트 2만원권을 줬다.

 사정이 이렇자 지난달 초 한 포털사이트에 구직자 인권법 제정 청원이 올라와 총 1260명이 서명했다. 인크루트가 진행한 관련 설문조사에선 579명 중 95%가 ‘구직자 인권법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고려대 이명진(사회학) 교수는 “이제 ‘기업이 지원자를 간택한다’는 후진적 채용 풍토에서 벗어나 취준생들의 기본 인권을 보장하는 새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혜경·김선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