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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전단 입장 바꾼 통일부 "필요하면 안전조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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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대북전단 살포를 제한할 수 있다’는 사법부의 첫 판단(6일)이 나온 뒤 정부 입장이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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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철 통일부 대변인은 7일 정례 브리핑에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정부의 기본 입장엔 변화가 없다”면서도 “하지만 필요시 경찰이 안전조치를 취하도록 협조해 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임 대변인은 전단 살포 단체의 통일대교 진입 금지 같은 통행 차단조치를 취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도 “필요시 가능하다”고 답했다. ‘정부 차원의 제재로 볼 수 있느냐’는 질문엔 “헌법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기에 그런 표현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며 “필요한 안전조치”라고 답했다. 제재라는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여러 조치를 모색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동안 고수해 온 ‘제한 불가’ 입장에서 한 발 물러선 셈이다.

다만 아직 남북 간의 정세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상황인 만큼 ‘가이드라인’을 쳐놓진 않겠다는 뜻도 내보였다. 임 대변인은 “정부가 향후 구체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조치를 취할지는 북한의 대남 위협 정도와 국민 간 물리적 충돌 정도를 고려해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통일준비위원회 고위관계자도 7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북전단 살포에 대해 “남북대화가 열려야 하는 상황에서 그것을 좌초시킬 수 있는 일은 자제했으면 하는 게 개인적 생각”이라며 “통준위 내에 전단뿐 아니라 다른 문제에 있어서도 남북대화 재개에 장애물이 있으면 그걸 극복해야 되지 않겠느냐 공통된 인식이 있다”고 말했다. 민관 합동기구인 통준위도 대북전단을 남북대화 재개의 ‘장애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탈북자단체의 대북전단 살포행위가 새해에도 중단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5일 탈북자단체는 새해 들어 처음으로 경기도 연천군 민간인통제선 인근에서 대북전단 60만 장을 날려 보냈다.

북한은 다시 대북전단을 남북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연계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7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남측은 대결인가, 관계 개선인가 입장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며 “지난해 ‘삐라’ 살포 책동에 의해 우리 총정치국장(황병서) 일행의 인천 방문을 계기로 모처럼 마련되었던 대화 분위기가 파탄되고 북남관계가 수습할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탈북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북한 반발→남북대화 중단이란 시나리오가 다시 현실화하는 기류다. 정치권에선 대북전단 문제에 대한 정부 내 분명한 입장 정리가 시급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통일부 등 정부가 보수단체의 눈치를 보느라 어정쩡한 입장을 취하는 바람에 상황이 호전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다. 일단 국회가 그 고리를 풀어 주는 움직임에 나섰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법안심사소위는 6일 ‘남북 상호 비방·중상 중단 합의 이행 촉구 결의안’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다. 결의안에는 ‘대북전단 살포행위가 남북관계 개선을 훼손하거나 주민들의 안전을 위협하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우리 정부가 취할 것을 촉구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대북전단 살포를 비판해 온 새정치민주연합뿐 아니라 새누리당 의원들까지 힘을 실었다.

 외통위 소속 새누리당 심윤조 의원은 결의안 통과와 관련해 7일 “정부가 대북전단 살포에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아 남북관계가 불필요하게 악화된 측면이 있다”며 “앞으로 정부가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국회가 명분을 제공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심 의원은 “정부는 해당 단체에 전단 살포 중지 또는 연기를 권고하거나 허가제 도입 등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단 살포를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자 지난 5일 대북전단을 살포한 이민복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대표는 “앞으로도 계속 대북전단을 날려 보낼 것”이라고 반발했다. 그는 “공개적으로 북한을 자극한다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비공개로 북한 주민에게 정보를 전하는 건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권리”라고 주장했다.

정원엽·위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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