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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정재의 시시각각

롯데월드몰이 살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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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정재
논설위원

잘 알려진 대로 잠실 제2롯데월드는 신격호 총괄회장의 꿈이다. 올해 93세를 맞은 그는 입버릇처럼 “서울에 세계 최고 높이의 제2롯데월드를 짓는 것이 여생의 꿈”이라고 말해왔다. 그 꿈이 완성 직전이다. 예정대로면 내년 말 123층 555m 높이의 롯데월드타워가 올라간다. 1987년 롯데가 땅을 사들인 후 29년 만이다. 비록 시간이 흘러 세계 최고 높이는 이루지 못하겠지만 완공되는 날 노(老) 회장의 감격은 남다를 것이다. 그날 1000만 시민의 박수까지 받을 수 있다면 신 회장의 드림월드도 ‘진짜 완공’될 것이다.

 그런데 지금 봐선 신 회장의 꿈이 반만 이뤄질 것 같아 안타깝다. 지난 두 달여간 12건의 잇단 사고 때문이다. 롯데는 별거 아닌데 부풀려졌다고 항변한다. 롯데 측 말마따나 사고는 별게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 12건의 사고가 별게 아니라는 롯데의 인식은 ‘진짜 별거’다. 수족관 물이 새고 극장 바닥이 흔들리는 건 넘어갈 수도 있다 치자. 인명 사고는 안 된다. 지난달 8층 공사 현장에서 인부가 추락했을 때도, 130㎏짜리 출입문이 떨어져 고객을 덮쳤을 때도 롯데 측은 119를 부르지 않았다. “경황이 없었다”는 설명은 변명으로만 들렸다. 되레 “롯데 측이 사고를 외부에 알리지 않도록 교육했다는 증언이 있다”는 한 야당 국회의원 말이 더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간 롯데가 감추고 줄이고 변명만 늘어놓은 탓이다. 사람의 기억과 입소문은 묘한 것이라서, 반복되면 부풀려지고 진실이라 믿게 된다. 게다가 감출수록 파헤치고 싶어진다.

 그런데도 롯데 내부에선 희생양 찾기에만 여념이 없다. 몇몇 임원들은 “홍보팀의 잘못이다. 이런 큰 공사에서 그 정도 문제가 안 생기면 그게 이상하다. 그걸 언론이 침소봉대하는데 홍보팀이 대응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안팎에서 이렇게 홍보팀만 만신창이로 만들어놓으면 끝날 일인가.

 백번 양보해 홍보팀 문제라 치자. 홍보팀은 왜 그랬을까. ‘신 회장의 염원을 우리가 꼭 이뤄드려야 한다. 누(累)를 끼치는 일은 절대 안 된다’는 집단의식이 과도한 긴장을 부른 건 아닐까. 긴장한 조직에 유연한 머리를 기대하는 건 난센스다. 신속·투명·소통은 사라지고 은폐·축소·왜곡만 남는 게 당연하다. 그러니 사실을 말하자면 롯데월드몰의 잇단 사고의 배후에도 임직원 누구도 직언하지 못했던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이나 자기 임기 중에 완공을 고집한 MB의 4대 강처럼 ‘총수 리스크’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개장 첫 달 하루 10만 명이 넘던 방문객은 두 달 새 7만 명 이하로 뚝 떨어졌다. 지난 주말엔 한산하다 못해 썰렁할 정도였다고 한다. 뒤늦게 사령탑을 바꾸고 안전 조직을 새로 만들고 투명·공개를 강화한다 하나 미덥지 않다. 발상부터 확 바꿔야 한다. 세계 최고 안전 기업 듀폰의 신화에 단서가 있다. 듀폰은 안전까지 상품화했다. 200년 전 직원의 30%를 잃은 대형 폭발사고가 계기였다. 창업자 듀폰은 안전한 공장을 짓는 데 올인했다. ‘신설된 설비는 최고경영자(관리자)가 직접 운전해보기 전엔 직원을 투입하지 않는다. 안전띠를 안 매는 직원은 해고다’. “모든 사고는 사전에 예방이 가능하다”는 듀폰의 안전 철학은 이렇게 탄생했다. 안전에 대한 집중 투자는 예상 밖 소득까지 안겨줬다. 안전 컨설팅, 안전 장비와 소재가 팔리는 상품이 된 것이다. 화학 회사인 듀폰 매출의 약 11%가 안전 관리에서 나온다. 화를 복으로 바꾼 것이다.

  롯데도 할 수 있다. 세계 최고를 만들겠다고 큰소리 쳐놓고 안전만은 “다른 데 수준이면 되는 것 아니냐”는 이중 잣대부터 버려야 한다. 임직원 누군가가 신 회장에게 이렇게 말해야 한다. “롯데월드몰의 문을 닫자. 한 달이든 두 달이든 좋다. 그래 놓고 나사못 하나까지 다시 조이자. 그래서 세계 최고의 안전 신화가 만들어질 때 다시 문을 열자.” 한 달 문을 닫으면 약 1000억원의 손실이 난다고 한다. ‘나사못 하나 더 조이려고 1000억원 넘는 돈을 썼다’는 스토리가 만들어져야 나쁜 기억과 입소문을 씻어낼 수 있다. 신 회장의 드림월드도 그때야 비로소 ‘진짜 완공’될 것이다.

이정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