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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78)제79화 육사졸업생들(131)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8기하면 5·16이 연상되고 5·16하면 박정희 장도영 두분을 빼놓을 수가 없다. 바로 이들은 6·25당시 육군정보국을 구성하고 있었던 정보 엘리트들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당시 장도영장군이 정보국장을 맡았고 그 밑에는 동자부장관을 지낸 유양수장군(60·광주·7특·예비역 소장)이 전투정보과장으로 있었다. 박정희 전대통령은 옷을 벗고 문관으로 유양수과장 밑에서 전투정보상황실장을 맡았다. 이 장도영-유양수-박정희팀 주변을 구성하고 있던 주류가 8기생들이었던 것이다.
그 핵심은 김종필 서정정 전재구 이영근 김진구 고제훈 석정선 전재덕등 팔팔한 청년장교들 이었다.
6·25남침 6개월전인 49년 12월28일 육본정보국에서는 적정종합판단서를 만들어 신성모국방장관과 채병덕참모총장에게 제출한바 있다.
그 판단서의 종합 결론은 중공 동북지역에 있는 연안군(중공군)3개사단 병력이 최근 북한으로 들어와 인민군에 합류하는 바람에 이북의 전력이 월등히 증강되었다는 것이다.
육본정보국은 당시 특수정보부대를 운영하고 있어 정보원들이 수시로 38선을 넘어 적정을 탐지해내고 있었다.
당시 정보를 종합해본 결과 인민군의 총병력은 ▲육군 정규군 20만 ▲전차 1백53대 ▲비행기 2백20대 ▲38경비대 2개여단등의 규모였다.
당시 우리는 전차는 1대도 없었고 비행기는 연습기만 몇대 보유하고 있을 때였다. 병력도 그 절반에 불과했다.
적은 주공을 포천 의정부지역으로, 조공을 개성·속초지역으로 정해 전면 남침하여 옹진지역에서 사전에 양동작전을 벌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동시에 당시 남한에서 준동하던 게릴라를 일시에 출동시켜 후방을 차단하리라는 것이 정보판단서의 주요 골자였다.
그러나 미측과 우리의 군고위층은 이정보를 거의 신임하려 하지않았다. 당시 정보국의 고문관이던 「리드」대위는 이것을 믿으려 하지 않았고 군고위층도 이대통령에게 잘 보이려 해서인지 무조건 우리가 강하고 적은 약하다는 식이었다.
즉, 『지금이라도 명령만 내리면 북진돌격해 점심은 평양에서 먹고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겠다』고 호언할 정도였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우리도 대비해야한다는 주장을 내세워 50년5월께 38선 보강을위한 예산조치를 국회에 내놓기까지 했다.
하지만 국회가 마침 5·30선거를 맞아 휴회중인 관계로 이 예산조치는 국회상정도 못해보고 6·25를 맞게되었다.
6·25발발 하루전인 24일에도 적정에 이상한 기미가 있다는 전투상황실의 보고로 참모총장 이하 나를 포함한 주요국장들이 상황실에 모였었다.
당시 이영근 김종필등 8기생 중위들은 붉은 그리스 펜을 갖고 상황판에 38선이북의 인민군 배치도를 그리며 적이 곧 남침해올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때는 어느 누구도 그것이 실감되지 않았다.
박정희상황실장은 그 주 수요일 고향인 선산에 일이 생겨 내려가 상황설명을 8기생이 맡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때 참모총장등은 『계속해서 잘 알아보라』고만 지시하고는 마침 토요일 오후여서 뿔뿔이 영내를 떠나 집으로 돌아갔다.
그후 들은 얘기지만 전투정보과에서는 그날 하오 38선 최첨단에 나가있는 정보부대 분대장들을 전화로 불러 『모든 대원은 민간복으로 갈아입고 오늘 저녁중으로 적진에 들어가 적정을 파악해 일요일 저녁까지 보고하라』고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당시 정보부대는 개성·옹진·포천·춘천 양모리등 7곳에 분산돼 있었다. 그때 적진으로 들어간 대원은 적이 이미 D데이 H아워를 카운트다운하고 있는 때여서 거의 다 포로로 잡히거나 전사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나 정보국의 판단서는 적중했음이 6·25발발로 입증됐다.
당시 적정이 이상한 것을 눈치채고도 준비를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미국때문이었다.
당시 「애치슨」미국무장관이 38선이 불안하다는 보고가 있을 때마다 『절대 남침은 없다』고 고집하는 바람에 한국정부로서도 어쩔 수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당시 미국의 고위정책가들이 한반도정세에 대해 너무 낙관적·희망적인 관측에 도취되어 「스탈린」의 냉엄한 본심을 읽지 못했던 것이다.
바로 이 점이 6·25에 대해 남으로부터의 선공이라는 이른바 북침설을 낳게한 근본요인이 아닌가 한다. <장창국><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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