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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는' 코미디를 무시하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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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단체 미팅 3차로 노래방에 갔을 때 남자들에게 인기 있는 여자가 되고 싶다면 나는 당신에게 절대 댄스곡을 부르지 말기를 충고한다. 부를 때야 남자들이 탬버린도 쳐주고 아싸! 하고 추임새도 넣어주고, 마당쇠처럼 머리에 넥타이도 매고 이에 김도 붙여가며 양말 벗고 방방 뛰어줄지 모른다. 그러나 정작 애프터 신청은 '부탁해요'같은 애절한 발라드를 부른 그녀에게 몰린다. 청승이고 내숭이어서 못하겠다고? 그래도 '보랏빛 향기' 이상의 비트는 넘어가지 마시라. 그 이상 가면 재주는 당신이 부리고 돈은 누가 챙기는 비극을 목격하게 될 테니까.

코미디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그렇다. 팽팽한 긴장과 시큰한 어색함을 그로 인해 풀면서도, 우리는 코미디를 만만하게 본다. 광고 시장에서도 코미디 배우들은 기껏해야 스낵이나 치킨의 모델로 만족한다. 한마디로 우리는 코미디를, 스낵이나 치킨을 먹으며 스낵이나 치킨처럼 보는 것이다. 심지어는 스낵 같은 영화에 출연한 치킨 같은 배우가 시사회 무대인사에서 이런 자학적인 멘트를 날리기도 한다. "별 내용은 없는 영화니까 그냥 웃다 가세요."

구어체에서, 코미디에 가장 어울리는 동사는 "한 편 보다"가 아니라 "한 편 때리다"이다. 그렇게 때려들대니, 코미디는 정말 도처에서 너무 얻어맞는다. 저질이라고, 자학이라고, 화장실 유머라고, 날림이라고…. 뭐 예술성까지는 요구하지 않는다. 그래도 보는 사람이 경멸하고, 하는 사람까지 자조하니 코미디는 대놓고 즐기지도 못한다. 눈치 보고 잔머리 굴리느라, 노래 하나 신나게 부르지 못하는, 단체 미팅 노래방의 남녀들처럼.

코미디를 폄하하는 담론들의 논리적 무기는 우리가 생산하고 소비하는 코미디의 소재와 방법이 후지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후져도 그게 우리를 웃겼다면, 그 재능을 존중하고 떠들썩하게 애프터 신청을 해주어야 한다. 안 그러면…. 상상해 보라. 죄다 발라드만 불러대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노래방 분위기를. 음지에선 실컷 웃어 놓고 정작 양지로 나와 근엄을 떨 여력이 있다면 차라리 더 크게 웃고 더 떼굴떼굴 구르는 게 남는 장사다. 웃기지 마, 웃기고 있네, 웃기는 짬뽕. '웃긴다'는 말이 어느새 악담으로 변질됐지만, 그래도 코미디에선 웃긴다는 말이 최고의 찬사다. 같은 논리로, 어떤 코미디가 받을 수 있는 최악의 저주는 심플하게도 이것뿐이다. "쳇! 웃기지도 않아요!"

노은희 영화 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