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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환영! 특수학교'란 플래카드가 보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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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신 진
사회부문 기자

지난 4일 오후 3시 서울 일원동 밀알학교 2층 체육관. 주변 주민들로 구성된 동호회 회원 20여 명이 탁구를 치고 있다. 탁구동호회 팀장인 정재완(51)씨는 “집 가까운 곳에 운동할 장소가 있어 좋다”고 소개했다. 이 학교 미술관과 음악회장에 자주 들른다는 다른 주민은 “밀알학교가 주민의 문화수준을 높여줬다”며 “덕분에 집값도 올랐다”고 흐뭇해했다.

 밀알학교는 정서·행동장애가 있는 학생들이 다니는 특수학교다. 지금은 주민들의 사랑방이 됐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1997년 특수학교가 들어선다고 하자 주민들은 거세게 반대했다. “집 앞에 왜 혐오시설을 세우느냐는 주민들에게 멱살을 잡혔습니다. 구청장은 ‘집값이 떨어지면 학교가 보상하겠다’는 각서를 쓰라더군요.” 학교를 설립한 홍정길(74) 목사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이런 17년 전 상황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특수학교는 혐오시설이자 집값을 떨어뜨리는 주범처럼 취급되고 있다. 지난해 중학교 이전 부지에 특수학교 건립 계획이 세워진 경기도 이천의 한 아파트. 단지 앞 도로엔 ‘대문 앞에 장애인특수학교가 웬 말이냐’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서울 강서구·중랑구에서도 특수학교 설립 계획이 나오자마자 주민들의 거센 저항을 받았다.

 만일 내 아이, 내 친척이 장애를 지녔다고 하자. 그래도 내 집, 내 대문 앞의 특수학교가 기피시설일까. 특수학교가 옆에 있으면 자녀 교육에 안 좋다고 반대할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말하는 교육은 누굴 위한 교육일까. 이런 사람들에게 밀알학교의 기적을 얘기해 주고 싶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밀알학교 주변 주민들은 “장애 학생들이 피해를 주는 건 하나도 없다”고 입을 모았다. 오히려 자녀의 인성교육에 도움이 된다는 주민도 있었다. 이 학교 북카페에서 딸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던 이정우(36)씨는 “학교 대강당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예배를 보는데 아이에게 ‘그들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려주는 기회가 된다”고 했다.

 장애가 있는 친구들과 생활해 본 학생들의 반응도 똑같았다. 서울 동명여고 최진영(18)양은 “편견을 가졌던 걸 반성하게 되고 책임감도 느껴져 오히려 배우는 게 많다”고 귀띔했다.

 주민들의 반대에 밀려 특수학교를 더는 짓지 못하고 있는 게 인구 1000만 수도 서울의 현실이다. 특수학교의 비극은 이제 여기서 끝내야 한다.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의 불행은 아랑곳하지 않는 사회를 대물림해서는 곤란하다. ‘특수학교가 웬 말이냐’ 대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보고 싶다.

신진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