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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통진당의 외신기자회견 취재제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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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위문희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위문희
정치국제부문 기자

“중앙일보는 취재를 거부한다. 방침이다.”

 5일 오후 2시40분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19층 복도에 서 있던 전 통합진보당 당직자 몇 명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기자를 막아서며 한 말이다. 이날 오후 3시 오병윤·이상규·김미희·김재연 전 통진당 의원이 외신기자들과 간담회를 했다. 그런데 전직 당직자들이 간담회장으로 들어가려는 기자들이 어떤 언론사 소속인지를 일일이 확인했다. 중앙일보 기자 신분을 밝혔더니 돌아온 말이 ‘취재 거부’ 방침이었다.

 기자를 막아선 한 명이 “오늘은 외신기자를 상대로 한 간담회이지, 국내 기자를 상대로 한 간담회가 아니다”고 해명조로 말했다. 하지만 이 말도 사실과 달랐다. 그들은 다른 국내 취재진은 외신기자와 함께 간담회장으로 들여보내고 있었다.

 기자회견장에 왜 기자가 들어가지 못하느냐고 묻자 그제야 “중앙·조선·동아일보와 종합편성채널은 취재를 거부한다. 단 기조연설과 질의응답은 보도자료로 보내주겠다”는 답이 나왔다.

 이날 간담회의 제목은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과 국회의원직 박탈은 한국 민주주의 파괴행위’라는 것이었다. “헌법재판소의 의원직 박탈은 정당·사상의 자유 침해”라고 국제사회에 호소하기 위해 기획됐다. 그런데 당장 간담회의 화제로 떠오른 게 그들의 ‘언론 취재 거부’ 문제였다.

 터키 언론의 기자는 “통진당은 ‘보수 측에서 억압을 받았다’고 주장하지 않느냐. 그렇다면 오히려 보수 진영을 설득해야 다음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 아니냐. 그런데도 (보수)언론의 출입을 금지했다. 이는 표현의 자유라는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취지로 따져 물었다고 한다.

 오병윤 전 의원은 “종편에 대해서는 우리가 오늘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처음 종편이 탄생할 때부터 취재에 응하지 않는다는 방침이었다”고 대답했다. 신문의 취재를 제한한 이유에 대해선 명확히 언급하지 않은 채 그렇게 둘러댔다.

 오 전 의원 등은 간담회에서 “다양한 생각이 공존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라거나 “헌재는 분단사회라는 한국의 특수성을 이유로 정당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제한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우리 헌법이 ‘사상의 자유’와 똑같이 보장하고 있는 것이 ‘언론의 자유’이며 ‘표현의 자유’라는 점을 그들은 잊고 있었다. ‘자유 침해’를 호소하면서, ‘자유 취재’를 억누르는 태도를 보였으니 외신기자들도 고개를 갸웃한 거다. 그들의 ‘취재 제한 방침’은 자신들이 주장하고 있는 ‘다양한 생각의 공존’과도 배치됨은 물론이다.

 외신을 불러놓고 여론전을 펼치는 태도는 어떤가. 과거 ‘외세 배격’을 외쳤던 NL(민족민주) 자주파 인사들이 이젠 ‘외세 의존형’ 홍보전에 매달리고 있다.

위문희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