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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글로벌 '부실 청소비' 누가 떠맡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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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채권단과 SK그룹에서 보면 SK글로벌 처리는 '내가 아니면 상대방이 손해봐야 하는'제로섬 게임이다. 한쪽이 SK글로벌의 부실 청소비를 덜 내면 다른쪽이 그만큼을 추가로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SK글로벌이 어떻게 처리되느냐는 곧 올 은행들의 성적표는 물론 SK그룹의 지배구조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SK측은 은행에, 은행들은 SK측에 더 많은 짐을 지우려고 안간힘이다.

*** 쟁점은 '빚 떠넘기기'=SK글로벌의 장부상 자산은 17조원이지만 빚이 15조4천억원인 데다 지금까지 확인된 분식회계만 5조원에 이른다. 여기에 추가 부실이 1조원이 넘는 것으로 이번 실사 결과 밝혀졌다.

문제는 국내은행 등 금융권 부채가 8조7천억원(3월 말 기준)에 이른다는 점이다. SK글로벌이 문을 닫으면 금융회사들은 이 돈만큼 손해를 보게 돼 있다. 채권단은 그간 몇차례 SK글로벌의 자구계획을 요구했다. SK글로벌은 보유 주식.부동산 매각 등으로 1조5천억원 가량을 조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어림없다는 게 채권단 판단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자본잠식만 4조원대에 이를 전망이고, 부실기업의 특성상 시간을 끌면 끌수록 부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연말까지 최소 4조원 이상의 자본확충이 이뤄지지 않으면 청산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채권단은 특히 SK㈜에 대해 SK글로벌 본사와 해외 현지법인에 출자한 대주주인 만큼 부실책임을 함께 져야 한다는 '연계책임론'까지 거론 중이다. 한 은행장은 "SK글로벌의 부실은 다른 계열사 부실을 대신 떠안았던 과거 재벌의 경영관행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SK글로벌의 부실을 은행이 떠안으면 다시 은행의 부실을 메우기 위해 공적자금이 들어가고 이는 결국 국민 세금으로 재벌 기업의 부실을 메워주는 결과"라고 지적했다.

이에 맞서 SK 계열사들은 '부실 계열사를 우량 계열사들이 지원하라는 것은 시장원리에 위배된다'는 입장이다. 우량 계열사 주주들의 이익에 반하는 만큼 채권단의 주장에 마냥 끌려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외국계 펀드인 크레스트 증권이 SK㈜의 대주주가 된 후에는 SK㈜, SK텔레콤 등 알짜배기 회사들이 노골적으로 "주주의 뜻에 반해 일방적인 지원에 나설 수 없다"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우량계열사 소액주주들은 "SK글로벌의 회계장부가 엉망인데도 거액을 선뜻 빌려준 은행들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 속사정 따로 있나=채권단과 SK그룹간 줄다리기를 한 풀 벗겨보면 '생존의 문제'가 담겨있다. 은행들로서는 우선 해당 은행장들의 거취문제가 걸려있다.

정권 교체 후 은행장 자리는 끊임없는 낙마설에 시달릴 정도로 위태롭다. SK글로벌로 손실을 크게 떠안을 경우, 자칫 은행장들이 줄줄이 옷을 벗게 될 지도 모른다는 '괴담'도 끊이지 않는다.

SK그룹 입장에선 공정거래위원회와 외국인 주주들도 의식해야 한다. SK그룹 관계자는 "분식회계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다면 SK글로벌의 부실 처리 비용은 모두 그룹에서 처리할 계획이었다"며 "채권단에 끌려가면서 처리하면 비용도 줄고, 소액주주 등의 압력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고 말했다.

*** 향후 전망=채권단과 SK그룹이 적정하게 손실을 부담하는 방안으로 SK글로벌 처리가 가닥을 잡을 전망이다. 채권단은 부실기업에 대한 대출 책임, SK는 분식회계와 대주주로서의 책임을 나눠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SK그룹은 SK글로벌의 자본잠식 금액(약 4조원) 중 10~20%만큼의 채권을 출자전환하고, 나머지는 채권단이 떠안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단은 SK의 출자비율을 높이라고 요구 중이다.

홍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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