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
이언숙 옮김, 민음사
384쪽, 1만9500원
최근 한국에서도 열풍을 일으킨 일본 만화가 마스다 미리의 만화 주인공은 대체로 젊다. 그들은 소소한 일상을 살지만, 상념도 많다. 그럴 때마다 반짝 빛을 내지 않아도 괜찮다고,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 토닥인다. 일본의 새로운 젊은이층인 사토리(득도·깨달음) 세대를 대표한다는 그의 만화답다.
1985년생 사회학자인 저자는 이 사토리 세대를 분석한다. 젊은 그가 받은 한가지 질문이 계기가 됐다. “일본의 젊은이들은 불행한 상황에 처해 있는데, 왜 저항하려고 하지 않는 겁니까”라고 뉴욕타임스의 도쿄지국장이 묻자, 저자는 답했다. “왜냐하면 일본의 젊은이들은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경제상황은 어렵다. 1990년대 들어 거품경제가 붕괴하면서 장기 불황에 빠졌다. 경제성장률·물가·투자·금리가 모두 최저 수준인 ‘신 4저 시대’인데도 젊은이는 행복하다니. 절망과 행복은 추상적인 단어다. ‘요즘 젊은이들은 발칙하다’는 식의 이야기도 주관적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저자는 떠도는 주장의 팩트를 찾고자, 다양한 자료를 그러모았다.
2011년 일본 내각부에서 발표한 ‘국민 생활에 관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20대의 생활 만족도는 높다. 남성은 65.9%, 여성은 75.2%가 현재에 만족한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고민이나 불안을 느끼고 있다는 응답도 그만큼 높았다. 저자는 “20대의 생활 만족도가 상승하는 경우는 일반적으로 ‘불황’이라고 하는 ‘어두운 시대’일 때가 많다”고 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었다. 행복하기 위한 다음 수순은 자기 충족화다. “젊은이들은 사회라고 하는 커다란 세계에는 불만을 느끼지만, 자신들이 머물고 있는 작은 세계에 대해서는 만족하고 있다.”(136쪽) 노년층으로 갈수록 행복도가 높아지는 이유와 비슷하다.
이런 현상이 지속된다면 미래는 어떨까. 일본에선 2023년엔 2명의 현역 세대가 1명의 고령자를 부양해야 한다고 한다. 해고 절차가 까다로운 종신고용제 탓에 정사원이 못 되는 ‘미생’이 넘쳐난다. 세대 간 갈등 요소는 많고, 고령자를 부양할 젊은이들은 무력하다. 젊은이 빈곤이 정말 심각한 문제로 나타나는 시기는 젊은이가 젊은이가 아닌 10~20년 후다.
해법이 없는 점은 아쉽다. 그래도 사토리 세대를 다각도로 진단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한국의 상황도 비슷하다. 성장의 미래를 믿었는데, 저성장 시대를 마주했다. 체념하여 행복한 일본 젊은이와 다르게 한국 젊은이들은 불행하다고 성토하고 있다. 책이 길 찾는 나침반으로도, 불길한 예언으로도 읽힌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