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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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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단순한 축제 아닌 꿈·낭만의 길잡이돼야">
어둠이 깔린 캠프장에 장작불꽃이 피어오른다. 이어서 울려퍼지는 밴드 음악소리 - 불꽃 주위에 둘러선 학생과 교수가 한데 어울려 춤을 즐긴다.
지난달 22일 충남부여 유드호스텔에서 가진 서강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은 캠프파이어를 클라이맥스로 추억과 아쉬움속에 2박3일의 일정을 마쳤다.
신입생을 맞은 대학가마다 오리엔테이션 행사가 한창이다.
『새 환경에 적응시키고 「캠퍼스가족」을 확인하기 위한다』는 오리엔테이션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신입생 숫자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사전교육」의 중요성이 인식됨에 따라 대형화되고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바뀌었다.

<학부모까지 참석>
대형 체육관이나 호텔·캠프장을 택하고 학부모와, 재학생·교수등을 대거 참여시키고 있다.
행사내용도 종래의 학사행정안내나 교수특강 이외에 교수 및 선배와의 대화·세미나·영화상영·연극·오락등으로 다채롭게 펼쳐 축제를 방불케 하고있다.
2일 하오 연세대 실내체육관, 5천여명의 신입생들이 빽빽이 들어찬 체육관은 응원구호를 외치는 젊음의 열기로 후끈거린다.
선배들의 지도에 따라 목이 터져라 응원가와 「아카라카」를 외치던 신입생들은 갑자기 입을 다물고 무대쪽으로 눈길을 몰린다.
날씬한 몸매에 청바지를 입은 여학생이 무대에 나와 유연한 몸짓으로 디스코 춤을 추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잠시 조용하던 행사장에서는 곧 함성과 박수갈채가 터져 나오고 휘파람소리도 들린다.
연세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의 필수과목인 응원연습의 열기는 이렇게 무르 익어간다.
사회학과 입학생 김한석군(20)은 『응원연습』을 통해 대학의 일원이 됐다는 사실을 실감했다』며 고교생활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대학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어 진짜 오리엔테이션이었다고 했다.
연세대나 고려대처럼 선배들이 마련한 프로그램에 따라 모교의 전통을 익히기도 하지만 신입생들이 스스로 준비한 내용으로 프래시맨답게 프로그램을 엮어 나가기도 한다.
서강대 합숙 교육중에 있었던 과대항 신입생 촌극대회에서 사회학과 학생들은 백제 의자왕과 3명의 궁녀를 등장시켜 현실을 풍자하는 재치를 보였는데 궁녀들이 왕에게 『아파트 분양권을 달라』, 『일본에 쇼핑관광을 보내달라』고 조를때마다 객석에서는 폭소가 터졌다.
갖가지 새로운 프로그램이 선을 보이고 있는 추세속에서도 아직까지 오리엔테이션의 주된 내용은 역시 학사와 학생활동안내.
최근에는 졸업정원제와 이른바 「불온서클」이 교내·외에서 문제화 되면서 이 두가지 이슈에 대한 고민이 오리엔테이션 과정에서 드러나 많은 에피소드를 낳고 있다.
82년 2월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렸던 S대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는 모교수가 『낡은 청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꺾어 신은 여학생이 다가와 얘기를 나누자고 하면 경계하라』고 당부, 청바지를 입은 여학생선배롤 「문제학생」으로 보는 바람에 뒷말이 많았었다.
또 K대에서 학과별로 열렸던 「교수·학부모 간담회」에서 학부모로 참석했던 한모씨(52·교사)는 『졸업정원제가 빚어내고 있는 비 교육적 부작용에 대한 대학 당국의 대책이 있느냐』고 신랄하게 추궁, 답변에 나선 학과장 L교수를 궁지에 몰아넣기도 했다.

<1인당 1만원꼴>
합숙교육과 레크리에이션 프로그램은 동료의식을 심어주고 교직원과 신입생이 쉽게 융화될 수 있어 인기를 끈다.
서강대는 합숙장소로 부여유드호스텔을 임대했고 성균관대는 수원 갬퍼스 기숙사, 성신여대는 도봉산 수련장, 이대는 단과 대학별로 백운산장·아카데미 하우스·반도유드호스텔 등을 이용했다.
학생 1인당 1일 숙박비로 보통 1만여윈씩을 거둔다.
합숙의 경우 새 친구와 새로운 세계를 맛본다는 기대와 함께 약간의 해방감까지 겹쳐 두고두고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긴다.
S대정외과 김광익군(20)은 합숙기간 중 「초주원척」을 어기고 매점에서 맥주를 사들여 파티를 주선, 룸메이트의 환호를 받았고 강모군(19·C의 대1년)은 혼자 소주2병을 마시고 돌아와 목욕탕에서 골아 떨어지는 바람에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대의 석모양(20)은 보물찾기 게임에서 보물대신 도봉산 일대에 흩어진 휴지를 잔뜩 주워와 상품을 내놓으라고 다그쳐 게임 담당 선배들을 당혹하게 했다.
또 I 대학 건강교육과 여학생들은 냄비와 솥뚜겅·젓가락 등을 동원해 즉석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밤늦도록 두들겨 밤참을 실친 여학생들이 많았다.
전체오락은 디스코파티나 장기자랑. S여대 성악과 합숙 오리엔테이션이 열렸던 아카데미하우스에서는 저녁식사가 끝난 뒤 디스코파티가 열리자 청일점(청일점)인 C교수를 둘러싸고 신입생들이 파트너 쟁탈전(?)을 벌여 다른 여교수들의 부러움을 사기도했다.
또 지난해 실실내 체육관에서 열렸던 H대 오리엔테이션에서는 「디스코왕뽑기대회」「인기가수 초청공연」등의 희한한 오락행사를 벌여 타대학 신입생들이 무더기로 구경하러 오는 바람에 오리엔테이션이 아닌 소문난 잔치가 된일도 있었다.
그러나 신입생들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이 선입생들에게 마냥 즐겁기만 한것은 아니다.
2윌16일 실내 체육관에서 열렸던 서울대 오리엔테이션에서는 3백∼4백명의 학생들이 행사도중에 밖으로 나가려다 문을 지키던 학교 경비직원들과 밀고 밀리는 소동이 벌어졌다.

<희한한 오악행사도>
도모군 (19·인문대1년)은 『학점에 관한 얘기와 이러이러한 일을하지 말라는 등의 얘기뿐 이어서 지루했다』고 빠져나가려던 이유를 밝혔다.
묵인희양(20·S대동물학과2년)은 『오리엔테이션과정에서 오히려 학교 이미지가 망가지는 경우도 있었다. 학교측의 얘기를 일방적으로 전날하는 것보다는 좀더 학생들을 의한 오리엔테이션이 되었으면 놓겠다』고 말했다.
대학생활의 첫걸음인 오리엔테이션이 요식적 행사나 단순한 축제연의 성격에서 벗어나 신입생들의 꿈과 낭만을 키워주는 참된 길잡이 노릇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것이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바람이다.<김재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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