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포기 합의] "산 너머 산, 벽 너머 벽 넘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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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자회담 개최 이래 가장 큰 성과를 거뒀습니다."

19일 낮 12시2분(현지시간)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에 6자회담 전체회의장. 의장국인 중국의 우다웨이(武大偉) 외교부 부부장은 이렇게 시작했다. 그의 말이 계속됐다. "공동성명 발표에 합의했습니다." 순간 앉아 있던 6개국 70여 명의 대표단이 일제히 기립했다.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흘 전만 해도 이곳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북한 대표단이 "경수로 제공을 안 해주면 핵물질 추출을 늘리겠다"고 선언, 회의는 결렬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그래서 이날은 극적 반전이었다.

19일 오전. 댜오위타이로 향하던 미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경직된 얼굴로 "오전 중에 끝낼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이미 이날 오후 귀국 비행기편을 예약한 상태였다. 그가 떠나면 회담은 끝이다. 한국 수석대표인 송민순 외교부 차관보도 이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송 차관보 역시 이날 오전 "오늘은 정말로 결정을 내려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힐 차관보는 타협 가능성이 없다던 보스니아의 인종 분쟁을 해결했던 인물이다. 이런 협상가의 입에서 "북한은 경수로를 가질 자격이 없다"는 말이 튀어 나왔을 정도로 그동안 상황은 벽이었다. 그래서 6자회담은 지난 17일부터 이미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중국이 요구했던 17일 최종 회의는 미국이 시간이 필요하다며 18일로, 다시 19일로 늦춰졌다.

오전 8시30분 예정됐던 전체회의. 계속 지연됐다. 중국 CC-TV가 그 이유를 전했다. 중국과 미국이 마지막 양자 접촉에 들어간 것이다. 나머지 4개국 대표단의 눈과 귀는 미.중의 만남으로 모아졌다. 낮 12시에 다가서며 회의장이 어수선해졌다. 갑자기 중국 대표단 관계자들이 회의장 바깥의 복도를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직후 회의장에선 공동성명 발표라는 일보가 튀어나왔다. 전 세계가 기다리던 결과였다.

오후 들어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선 한국 수석대표인 송민순 차관보의 얼굴엔 기쁨이 가득했다. 그는 상기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외교는 협상을 통해 타협을 하는 예술이다. 합칠 수 없는 것도 합치는 예술이다." 전날 밤에도 송 차관보는 중국.미국 대표단과 숨가쁜 타결 접촉을 시도했었다. 의장국인 중국의 우다웨이 부부장도 그간의 산고를 "산 너머 산, 벽 너머 벽을 넘었다"는 말로 표현했다.

허겁지겁 수석대표 기념 촬영을 하고 공항으로 출발하려던 힐 차관보는 항공편 시간에 쫓기면서도 이례적으로 30여 분이나 질의에 답했다. 그 역시 "회담은 모두가 얻는 결과"라고 했다. 하지만 그늘은 남는다. 힐 차관보는 북한의 향후 조치를 지켜볼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날 늦게 일본 대표단 측으로부턴 "북한의 핵 프로그램이 무엇인지에 대해 모두가 동의한 것은 없었다"는 말도 나온다. 타결의 기쁨 속에 가려진 뇌관들이다.

베이징=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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