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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보다 더 값진 사회경험"|-아르바이트 방범대원을 마치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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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앞으로 며칠이면 개학이다. 학우들과도 만나고 방학을 지낸 이야기도 하게 될 것이다.
『두달 동안 방범 아르바이트를 했지』 『그럼 돈 좀 벌었겠구나. 술 한잔 먹자』 『그래, 술은 네가 사야지』라는 등의 말이 오갈 것이다.
이번 방학때 한 아르바이트가 남긴 것은 금전 말고도 또 있다. 그것은 사회를 경험해 보았다는 사실이다. 대학생활을 한 학기 남겨 놓고 있는 나같은 경우에는 특히 의의가 있었던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첫날 파출소장의 인사와 근무에 관한 설명이 있은 뒤에 곧 방법대원 복장을 했다. 거울에 비친 우리들 모습이 어색해 보이고 하루아침에 치안업무에 나서게 되었다는 것이 어처구니 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하루 이들「대원형님들」(우리는 나이 차가 상당한 이분들을 「형님」이라 불렀고 형님들도 그것이 「아저씨」보다는 낫다고들 했다)과 골목 골목을 누비며 생활하다 보니 차차 익숙해져 갔다.
걷는 일로 근무가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다리도 아프고 발도 시렸으나 고단하다고 내색 할수는 없었다. 기성. 방법대원들은 경찰관 당번 근무자와 마찬가지로 방을 새워 일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시간당 임금을 따져보니 학생방법대원이 시간당 1천원 꼴인데 비해 그분들은 5백원도 못되는 액수였다. 노력과 공로에 따라 결정되어야 하는 보수가 학력수준으로 인해 이렇게 차이가 난다는 사실에 미안한 느낌을 가지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두달째 접어들면서 파출소 경찰관들과 함께 순찰하게 되었는데 경찰관들도 방범대원보다 나을게 없는 수준의 봉급을 받으면서 고생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때부터 피의자를 상대하는 일도 전에 비해 많아졌다. 폭력·사기 등등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고 들으면서 치안업무의 어려움을 느끼는 동시에 범죄현상을 사건으로서만이 아니라 사회적 명리로 보는 각도에서 이해해야 할 필요성을 새삼 확인했다.
『무슨 죄든 혼자 짓는 것은 없다. 모든 이가 함께 것는 것이다』라는 뜻의 「칼지브란」의 시귀절이 자주 떠올랐다.
소장과 직원들도 법을 적용하는데 신중을 기하는 것을 보았을 때 지금까지 막연한 거리감을 가졌던 경찰상징인 독수리·태극마크가 믿음직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이번 방학을 방범 아르바이트로 보내면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는 가운데 배움을 갖게 한 것도 경찰관여러분의 성실한 근무자세 덕분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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