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껄끄러운 연금개혁특위 서로 '등 떠밀기' … 새누리, 싫다는 주호영 위원장 강제 임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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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김경희
정치부문 기자

29일 오전 10시13분 국회 새누리당 대표실에서 열렸던 최고위원회의가 비공개로 전환되자마자 주호영 정책위의장이 고개를 떨군 채 회의장을 빠져 나왔다. “국회 공무원연금개혁특위 위원장을 맡기로 한 거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니다”며 손사래를 치곤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이내 따라 나온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가 황급히 주 의장을 따라 들어갔다. 이완구 원내대표도 헐레벌떡 가세했다.

 1분쯤 지났을까. 이 원내대표와 김 수석부대표가 방에서 금방 나왔다. 그러곤 다시 최고위 회의장에 들어갔다. 다시 1분쯤 후. 회의장을 빠져 나온 이 원내대표가 이번엔 복도에 섰다. 그러고는 “주 의장을 공무원연금개혁특위 위원장으로 ‘강제임명’했다”고 발표했다. 형식적인 동의 절차야 거쳤겠지만 불과 3분 만에 ‘못 맡겠다’던 주 의장에게 위원장 자리를 억지로 떠넘긴 것이다. 이 원내대표의 손에 이끌려 기자들 앞에 나온 주 의장은 대구 사투리로 “이게 맞~나~”라며 울상을 지었다. 영락없이 “도살장에 끌려 나온 표정”(김재원 수석부대표)이었다.

 이처럼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진 건 아무도 특위 위원장을 맡겠다고 나선 의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후 본회의에서 연금특위 구성 결의안이 통과됐으니 당장 31일부터 역사적인 연금개혁 작업을 시작해야 했다. 하지만 전날까지도 위원장 직을 놓고 당 공무원연금개혁 TF 위원장을 맡아온 이한구 의원과 당 지도부 일원으로 대야 협상을 이끌어 온 주 의장이 서로에게 공을 떠넘기기만 했다.

 그들이 겉으로 내세운 명분은 “나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위원장을 맡아야 한다”는 거였다. 하지만 그보다는 다음 총선을 염두에 둔 ‘몸사리기’라는 지적이 많다. 이 의원과 주 의장의 지역구는 대구 수성갑·을로 이른바 교육특구로 불린다. 주 의장은 “(지역구인) 대구 수성구가 아마 전국에서 퇴직교육자 비율이 가장 높을 것”이라며 난처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새누리당은 위원장을 선정하는 데만 애를 먹은 게 아니다. 특위 위원 선정도 의원들이 저마다 슬슬 뒷걸음질 치는 바람에 순탄치 않았다. 공무원연금 개혁을 첫 번째 과제로 내세우며 밀어붙이던 집권 여당의 모습이 과연 이래도 되나 싶다.

 연금개혁안 후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벌써 나온다. 한 당직자는 “주 의장은 원래 연금개혁 자체에 부정적이었는데 제대로 개혁을 할지 걱정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전했다.

 특위는 앞으로 5일 안에 구성을 끝내고 100일간의 대장정을 시작한다. ‘개혁 의지’가 없는 위원장과 의원들이 과연 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공무원 연금개혁이 걱정이다.

김경희 정치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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